[대학通] 비움과 느슨함이 흐름(FLOW)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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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평소처럼 사무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다가 위층 D부처의 K처장을 비롯한 직원 일행을 만났다. “같이 점심할까요?”라는 K처장의 제안에 두 부서는 함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D부처의 H부장이 화두를 꺼냈다. D부처 신입직원 두 명을 2개월 동안 교육을 시킨 후, 담당 업무 관련 K부처로 보내 업무를 맡길 계획이라는 것이다. H부장은 ‘직원들이 소속 부서 내에서만 머물지 말고 업무 현장에 가서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필자의 소신을 잘 알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필자는 적극적인 지지 의사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강한 연결’도 필요하지만 ‘느슨한 연결’이 소통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보탰다. 느슨한 연결에 대해 물리학을 전공한 K처장이 공감을 표하며 숫자 퍼즐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숫자 퍼즐은 모든 공간이 숫자로 다 차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칸이 비어 있어서 흩어진 숫자를 재조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시 이공계 시각에서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전도성 고분자’의 원리도 숫자 퍼즐 원리와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필자가 사무실로 되돌아와서 검색한 전도성 고분자의 원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분자(플라스틱)에서 한 개의 전자를 제거해 전기적 구조에서 구멍을 만들면 이웃하는 원자로부터 전자가 빈 구멍으로 뛰어 들어오고 또다시 새로운 구멍이 생기게 된다. 전자가 부족한 구멍은 양전하에 해당하고 사슬에 따라 구멍이 이동해 전류를 발생시킨다.’

조직 경쟁력 강화를 외치다 보면 자칫 부서 내에서의 강한 연결만을 강조하기 쉽다. 같은 구성원끼리만 업무 유대관계를 가지고, 같이 식사하고, 단합대회를 한다. 이처럼 각 부서는 각자 내부 응집력을 강화하고 자기 목표를 위한 업무로 꽉꽉 채운다.

하지만 조직 전체 차원에서 보면 부서 내 강한 응집력이 오히려 부서 간 소통을 방해해 조직을 경직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과 같다. 따라서 조직은 부서 응집력을 강화하면서도 전체 조직이 경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그 행동의 하나로 각 부서에 다른 부서의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 하나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조직이 ‘전도성 고분자’처럼 소통할 수 있다. 모든 부서가 각자 빈자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 고분자에서 한 개의 전자를 제거하면 되듯이, 어느 한 부서(A)에서 먼저 빈자리를 만들어 다른 부서(B)의 누군가(e)를 받아들이면 연쇄적으로 빈자리가 생겨 소통할 수 있다.

여기에서 e가 본연의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서 e가 B부서 고유의 업무 능력을 잃어버리고 A부서의 업무 능력으로 변화된다면, 빈자리로 이동한 목적이 사라진다. 그래서 e는 고유의 업무 능력을 강화하면서 A와 B부서 사이에서 느슨한 연결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과학에서 전자(electron)의 특성은 변하지 않지만, 사회 조직에서는 구성원(e)이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부서를 넘나들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조직은 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성원을 계속 양성, 공급해야 한다.

필자의 강의 노트에는 숫자 퍼즐 사진이 이미 있었다. ‘부서나 구성원은 창의적인 생각과 소통을 위해 자기 능력의 10% 정도는 여유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K처장은 내 강의 노트를 엿보기라도 한 듯이 숫자 퍼즐 이야기를 꺼냈고 거기에 과학적 이론을 보태줬다. 필자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우연히 만난 점심시간이 사회과학적 현장의 문제를 자연과학으로 풀어내는 융합의 즐거움을 맛본 자리가 됐다. 이 또한 느슨한 연결의 힘이 아닐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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