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교수노조 “정치권, 시간강사처우 개선 나서라”
국회입법조사처 “강사제도 지원 부족” 지적
"언젠간 적체된 문제 터져나올 것…예산 확보 시급"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강사법이 시행된 지 약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강사의 고용 악화는 물론 학생 수업의 질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예산안 실현과 확대를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원들이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 한교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원들이 11월 27일 국회 앞에서 강사법과 관련해 정치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 한교조]

11월 27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하 한교조)는 “황폐화된 고등교육과 열악한 강사처우 개선에 나서라”며 국회와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교조는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개정강사법이 시행됐지만 국회와 대학의 구태로 짓밟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2020년도 예산안 규모와 국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 대학의 이익 극대화 행위 등을 지적했다.

정부의 예산 배정 불합리, 방학기간 임금 지급 쟁점= 한교조에 따르면 정부는 ‘강사의 방학 중 임금 지급’을 4주간 필요 예산의 70% 규모로 설정했다. ‘전업·비전업 강의료 차별 개선 예산’을 국립대 대응 예산만 설정하면서 사립대 대응 예산을 설정하지 않았다. 당초 논의됐던 강사의 직장건강보험 적용 논의도 빠지면서 강사의 고용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강사법 시행에 따른 쟁점과 개선과제’ 보고서도 ‘강사 처우개선 미흡과 강사제도 정착을 위한 지원 부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방학기간 동안 강사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률에 방학 기간 임급 지급을 규정했다. 그러나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 방학기간 임금 지급 부분에서 2주 해당 예산만 지원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정부는 2020년 예산안에 강사의 방학기간 임금 지급을 4주에 해당하는 577억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대학의 방학기간이 4개월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방학기간 임금 지급 기간이 너무 적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됐다. 충분치 않은 임금 지급도 대학과 정부가 나눠 지급한다. 사립대의 경우 강사에게 방학기간에 지급하는 임금을 정부가 70%, 사립대가 30%를 부담하는 방식을 적용하도록 했다.

후속 대책도 실효성 떨어져···대학 책임론도= 강사 지원 대책인 시간강사지원사업의 경우 지원자격에 제한이 따른다. 때문에 사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강사가 적다는 문제도 있다. 시간강사지원사업의 지원 자격요건은 ‘최근 5년간 강의경력이 있는 석사학위 소지자 중 사업 신청 마감일까지 강사로 채용되지 않은 연구자’로 제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사가 학기에 강의를 하나만 맡으면 경제적 문제로 연구 수행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강의를 하나만 맡아도 사업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대학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일부 대학에서는 강좌를 줄여 수강 인원을 늘리거나 전임교원의 책임강의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강사법의 피해를 줄이려 하고 있다. 다만 대학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학들은 강사법 개정 이후 대학에 부가되는 재정적·행정적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현실 모르는 법안이 가져온 부작용···강사 고용 불안정 지속, 학문연구 후속세대 붕괴= 이대로 강사법이 지속되면 강사의 고용 불안정은 물론 이로 인한 학문연구 후속세대의 붕괴,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대학과 전문대학의 강사 수는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고용노동부의 ‘10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서도 교육서비스업 종사자가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마지막 영업일 기준 158만7000명으로 작년 동월보다 0.9% 감소한 1만5000명이 줄었다. 대학이 다수 포함된 300인 이상인 사업체의 경우 상용직은 증가했으나 임시·일용직이 4만7000명 감소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일각에서는 임시·일용직 강사를 줄인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사의 신분이 불안정해지는 것이 1차적 문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이 생기면서 2차 문제가 발생한다. 교육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서는 2019년 2학기에 20명 이하 소규모 강좌의 비율이 2017년과 2018년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2018년도 총 강좌의 수는 31만2008여개였지만 2019년 총 강좌의 수는 30만 5353개로 6655개 강좌가 줄었다.

강사의 수가 줄어 소규모 강좌 대신 대규모 강의가 늘면서 학생별 수준에 맞춘 강의가 어려워진다. 이는 또 다시 수업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문후속 세대를 키우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대학의 강사들은 미래 대학의 교원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연구자들은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대학에서 강사를 축소하면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커지고 연구 병행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금은 괜찮겠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면 초과 강의로 인한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학생들도 수업의 질 하락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라며 교육부와 국회에 실질적인 예산안 확보를 재차 요구했다.

강사법 제대로 운영되려면 예산 확보 시급= 재정지원사업 강사 고용안정 관련 지표 반영, BK21 후속사업 지원, 기타 강사제도 정착 정책 추진 등 정부가 강사법 지원과 관련해 대안을 내놓긴 했지만, 현장 관계자들과 전문가는 모두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사노조는 예산안 확보를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상룡 한교조 수석부위원장은 “방학 중 임금 지급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교육부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예산을 넘겼는데 그마저도 지금 삭감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추가 필요 재원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소 1139억원에서 최대 3392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는 2020년 예산안에 강사 지원과 관련해 방학기간 4주 임금 577억원, 퇴직금 지급 232억원 등 총 139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정부가 실질적으로 편성한 예산은 총 809억원으로 강사처우개선 필요 재원의 추정 규모인 3000억원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조인식 국회입법처 연구원은 강사의 신분안정과 학생의 수업권 보장, 강사제도 정착을 위해 시급히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연구원은 “지원규모의 적정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