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인문사회 학문후속세대의 최소한의 연구 안전망 구축하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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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16일 본지와 특별인터뷰
“학문후속세대 지원이 곧 국가의 미래…추격형 아닌 ‘선도형 인문사회’ 발전 모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자생력에 주목해야 한다. 튼튼한 인문사회과학 역량이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시민사회, 5만 달러 선진국 진입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문사회 분야의 기초학문이라 할 수 있는 ‘문헌학(philology)’. 이 가운데서도 유교 문헌에 집중하고 있는 중문학자인 이강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선임됐다.

이강재 신임 본부장은 서울대에서 공자와 논어 해석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삶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집중한 학자다. 미국과 함께 새로운 양극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역시 큰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했다.

1999년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에 임용된 그는 10년 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로 1년의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흐른 지난해 말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선임되며, 익숙했던 학자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길에 나서고 있다. 그는 “줄곧 연구자의 입장에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 본부장으로서 ‘관리자적 특성’을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가연구개발비 투자비 가운데 1.1%’라는 수치가 상징하듯,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책적 관심은 푸대접을 넘어 ‘무대접’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하지만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오랜 무관심과 홀대 속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지키며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문화 강국의 바탕을 다져왔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 말고, 이렇게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분야가 또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강재 본부장의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와 이 본부장이 함께 그리는 뜻을 읽어본다.
※ 본지는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대면이 아닌 유선전화로 인터뷰를 16일 진행했습니다.

- 지난해 말,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에 선임됐다. 우선 신임 본부장으로서의 소감은.
“인문사회 학문분야의 생태계가 워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전체 학술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느끼면서 일에 임하고자 한다. 연구자의 입장으로는 그동안 연구재단이 진행하는 개인연구와 집단연구 과제 대부분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어 대략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재단이 나와 같이 외부의 인력을 수혈한다는 게 실제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적용하며 정체될 수 있는 시각을 넘자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재단의 관리자적 특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

- 연구재단 구성원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텐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막상 그 입장에 서면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연구재단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연구비 지원 과정의 신뢰도나 행정적인 측면의 경직성을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고요(웃음). 하지만 연구비 집행과 관리라는 연구재단의 속성 상 상대적으로 자율성이나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여건 내에서 어떻게든 보다 더 연구자들에게 좋은 제도와 지원방식을 고민하는 연구재단의 노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 여러 언론에 기고도 했고, 토론회에서 역시 ‘시간강사’ 문제에 걱정이 많았었다. 같은 연장선 상의 고민이었는지.
“그렇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대한 빈약한 연구지원 체계와 함께 학문 후속세대나 동행세대인 비전임 교원들의 불안정한 신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 사회에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박사 학위자들의 전임교원 충원이 급격히 정체되기 시작했다. 대학원의 박사학위 배출자가 과거에 비해 급속히 늘어난 반면,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으로 전임교원을 새로 충원하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연구소 내에 박사학위 전임직을 설치하는 인문한국(HK), 한국사회기반연구(SSK) 등의 사업이 시작됐지만, 비전임 연구자의 수요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 스스로가 원해서 한 공부인데, 이 책임을 왜 국가에 떠넘기냐는 핀잔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원의 박사과정은 취미로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이들 역시 한 사람의 당당한 연구자이며 현재의 전임교원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는 그 공백을 채우고 학문을 혁신해 갈 중요한 인력들이다. 학문의 미래는 곧 국가의 미래인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조차 없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학문에 매진하고자 하는 후학들이 없어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부분이 국가의 책임과 지원이 절실한 지점이다.”

- 그렇다면 학문후속세대의 연구 단절을 막기 위한 지원 방안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비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학술주제뿐만 아니라 신진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지속돼야 한다. 올해 초 교육부가 ‘2020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통해 발표했던 것처럼 인문사회 분야 신진연구자 3300명이 최대 4000만원의 국가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비전임 연구자들의 안정적인 연구 기반 확충을 위해 현재 179개인 인문사회 분야 연구소를 197개로 늘려 약 400명의 박사급 연구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 인문사회 분야 전반의 연구 지원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돼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의 인문사회 분야 R&D 예산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연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집행하는 예산을 모두 다 합쳐도 전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1%대에 불과하다. 사실 인문사회 분야가 실험이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문인만큼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 수준의 과제 선정율을 놓고 비교해도 과학기술 분야보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구자들의 비율이 무척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지레 포기한 연구자들의 숫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수혜율이 이보다 한참 더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계속해서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첫 번째 임무로 연구예산의 안정적인 확보와 증액 노력을 꼽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연구예산 확보와 더불어 이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지속가능성,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데이터도 중요하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처럼 전문 정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학술연구 지원의 타당성을 설득할 수 있는 기본자료와 논리가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는 그런 바탕이 없다. 개별 연구소나 개별 연구만 있을 뿐 중장기적 전망에 의거해 인문사회 전반의 학술지원 정책을 추동할 만한 기반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인문사회 분야 씽크탱크의 역할을 연구재단이 담당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학계도 힘을 모아 지속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인문사회 분야의 위기와 정책적 뒷받침에 대한 논의는 사실,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해외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라면.
“해외의 인문사회 진흥책은 분명 참고할 만하지만, 한계도 동시에 있다. 인문사회 지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평가에는 그 나라 고유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인문사회 발전 역시 추격형이 아니라 선도형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모두 탄탄한 인문사회 기반 위에서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이뤄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진정한 시민사회,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역량을 더욱 탄탄히 하기 위한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후속세대가 더 높은 수준의 풍요와 문화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10년을 주기로 일신 상의 변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나게 된 것은 대학에 직장을 잡고 근 10년간 정신없이 달려온 뒤였다. 학교 보직 때문에 출국 직전까지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떠나게 돼서 곤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넉넉한 자연과 가족의 품, 그리고 다른 걱정 없이 관심사에 매달릴 수 있는 연구환경 덕분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동양의 고전만을 고집하던 내가 더 보편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 대략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흘러, 이제는 대학 밖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1년을 제외하고는 늘 교내의 일에만 매달렸다. 몇 개월 간 중국어 표기를 위한 위원회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학을 떠난 적이 없었다. 모든 문제를 대학 안에서 해결하려 했고,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내 사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의 좁은 단위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 공자는 55세에 이르러 관직을 버리고 이상세계의 답을 찾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했다. 본부장 역시 비슷한 나이에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길에 나선 까닭에 부쩍 공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헤아리는 계기로도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본부장의 여러 글들 속에서 특히 ‘리더십’에 대한 고민들이 자주 엿보이는데.
“공자는 늘 이상적인 국가 공동체의 구현을 고민했다. 논어 역시 관직으로 나아가 이상세계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제자들과의 대화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군자를 리더로 해석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끊임없이 수련하는 군자의 길이 곧 리더의 길인 것이다. 자기 수련이란, 곧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리더는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각자의 옳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본부장 역시 이제 연구자, 교육자뿐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때인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도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의 자리가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이제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여전히 미지수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함께 열심히 고생하는 구성원들이 있는 만큼 계속해서 소통하며 책임을 다하려 하고 있다.”

- 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서 계획하고 있는 목표를 듣고 싶다.
“요즘 본부 구성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예산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연구자들을 위한 ‘적극행정’이다. 기본적으로 지원사업의 공고된 일정을 최대한 잘 지키는 것이 연구비 지원 이상으로 연구자들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실천이 연구자와 연구재단의 신뢰를 높여가는 데 큰 밑바탕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이슈]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최대 5년간 연 4000만원 지원”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가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단절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에 따른 학술생태계 붕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연구재단은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을 ‘장기지원(A유형)’과 ‘단기지원(B유형)’으로 나눠 진행할 계획이다. ‘장기지원’에서 300명을 선정해 5년간 연 4000만원을 지원하며, ‘단기지원’에서는 3000명을 선정해 1년동안 총 1억4000만원을 투입한다.

‘장기지원’은 5년의 기간 특성에 맞게 2년의 중간평가를 실시하되, 최대한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경력단절 여성 연구자의 출산기간을 산정한 업적 기간을 확대한다. 질적 평가를 중시해 대표업적 1편에 대해 ‘질적 평가 점수’를 높여서 평가하도록 했다. 장기 과제 중, 박사 후 7년이 경과한 연구자에게는 과제 신청 시 국가적 지원이 긴요한 연구 분야임을 밝히도록 하고 이를 과제 심사에서 반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장기지원은 국내 대학 등 주관 연구기관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주관 연구기관별 과제 신청 수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대신 주관 연구기관에서 연구자에게 연구 공간 제공의 의무를 면제했다. 다만 국내 대학을 통해 신청하기 어려운 연구자의 경우, 한국연구재단에 직접 과제를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정 뒤 연구자와 협의해 대학 부설연구소에 배치하거나 별도의 주관연구기관을 위탁 지정할 수 있다.

‘단기지원’ 역시 경력단절 여성 연구자의 출산 기간을 산정한 업적 기간을 확대한다. 국내 대학 등을 통해 신청하도록 하되, 연구재단 직접 과제 신청도 역시 가능하다.

단기지원은 특히 지원 자격을 석사학위 이상인 연구자 가운데 석사학위 논문 외 1편 이상의 연구업적을 가진 연구자로 대상을 넓혔다. 예술, 체육계 연구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이와 더불어 우수한 박사과정 연구자도 신청이 가능하도록 문호를 넓혔다고 연구재단은 설명했다.

장기지원(A유형)은 4월 3일부터 9일까지 신청이 가능하며, 단기지원(B유형)은 5월 6일부터 12일까지 과제 신청을 받는다. 이 사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이강재 본부장은 “‘박사후국내연수’와 ‘학술연구교수’를 통합하되, 전체 규모는 3배 정도로 확대하고 연구지원 연수를 5년으로 늘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인문사회분야 학계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업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매우 크고, 학계 모두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올해 사업 선정 결과를 반영해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예산의 확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중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에 임용된 뒤, 인문대학 기획부학장과 인문학연구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국가교육회의 고등교육 전문위원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 선임됐다.

<대담, 정리=김의진 선임기자 / 사진=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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