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희의 세상읽기] 느림의 가치, 혹은 2등의 아름다움
[한강희의 세상읽기] 느림의 가치, 혹은 2등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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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대학지자체상생발전위원장)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우리는 2등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고객이 우리 회사를 이용해야 할까요. 2등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이 광고 카피는 렌터카 회사인 에이비스社가 시장 점유율 50%를 상회하는 1등社 허츠를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에이비스는 빌 번벅이라는 신예 카피라이터를 고용해 포지셔닝 전략을 감행했다. 광고가 나간 후 무명의 카피라이터는 일약 광고계의 스타로 부상했고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허츠는 다소 휘청거렸다. 두 렌터카 회사의 공방전은 한동안 시소게임을 벌였다. 이윽고 에이비스는 동종업계의 군소 회사들을 따돌리고 허츠와 함께 렌터카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가끔 학생들에게 ‘2등은 1등보다는 인간적이고, 3등보다 뛰어난 양수겸장의 등수’라며 2등이 아름다운 이유를 강변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아, ‘말의 사치‘ 정도로 여기지만 그럴 때마다 진지하게 사족을 덧붙인다. 많은 1등들은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직선으로 달려가지만, 2등은 이곳저곳에 귀 기울이기 때문에, 혹은 부족한 듯한 허기를 느끼기 때문에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된다고 역설한다.

굳이 인생사의 승부를 이분법적으로 대입하자면 단순히 1등과 2등이 아닌 성공과 실패, 빠름과 느림 등속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조 섞인 얘기로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 상황을 여기에 대입한다면, 1등은 수도권대-국립대-종합대가 될 것이고, 2등은 지방대-사립대-전문대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2등인 상황에서 한계와 소외감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이고 자학적이어야만 하는가. 1등이 최상의 등수이지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2등이라고 해서 썩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합리적인 시각 조정을 통해 2등이 갖는 특유의 장점을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1등이 느끼지 못하는 자잘하고도 여유로운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부족한 듯 2등으로 느리게 사는 것은 영장류-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자 지혜다. 속세적인 해석으로 빠름을 1등에 비유하자면 느림은 2등에 속한다. 그런데 ‘느림’을 선호하면 읽고 싶은 책읽기에 차분히 몰두할 수 있고, 여차하면 베스트셀러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즐길 수 있다. 건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강변공원을 조깅하며 비지땀을 흘릴 수 있다. 많은 ‘1등 부류’가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맞춰 ‘이성의 고속도로’를 질주해야 하지만 2등 부류는 꼬불꼬불한 국도를 드라이브하며 시냇물이 속삭이는 감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퉁가리가 돌 틈으로 숨는 모습, 올망졸망 날갯짓하는 해오라기 떼를 보느라 멍 때리기도 할 수 있다. 이렇듯 ‘느림’과 ‘2등’이 부여한 즐거움은 도처에 널려 있다.

간혹 2등은 재기와 도약의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특정 국가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거나, 본선 진출 이후 16강 진입에 실패한 것도 굳이 따지자면 2등에 머무른 경우다. 그러한 ‘2등적 성과’로 인해, 고진감래 내지는 와신상담해 다음 기회엔 4강을 넘어 우승까지 차지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머무르게 된 2등과 좌절과 체념으로서의 2등은 다르다. 후자는 사실상 꼴등이다. 성적이나 대학입시를 비관해 세상을 등진 경우도 꼴등이다. 표 나게 강조하거니와,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은 2등은 아름다운 등수다. 다소 늦은 출발이 견고한 자가발전으로 다져져 견실한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코로나 사태로 신학기가 늦어져 2020학년도 대학 신입생들에겐 벅찬 설렘이 다소 무색해진 상황이다. 아무튼 48만5000 수험생의 노고에 늦게나마 박수갈채를 보낸다. 낙방의 고배를 마신 이들에게도 재기와 도약을 다지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띄운다. 낙방은 3등도, 꼴등도 아니다. 단지 지금 2등일 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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