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돌런 지음, 정미현 옮김 《신과 인간의 전쟁, 일리아스》

[한국대학신문 조영은 기자] 이 책은 자타공인 ‘전쟁 덕후’인 저자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써내려간 것이다.

우리는 아킬레우스, 헬레네, 아테나와 제우스 등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에는 익숙하나 《일리아스》는 제대로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저자는 그것이 《일리아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제껏 《일리아스》가 읽히고 소개된 방식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일리아스》를 들려주겠다며 이야기 배달꾼을 자처한다.

이 책은 원전보다 더 원전의 속성에 가깝게 전투 장면을 보강하고, 이야기에 담긴 신과 인간의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도록 현대의 언어 감각에 맞춰 각색했다. 책을 펼치면 덮을 수 없을 만큼 빠져들도록 새롭게 그려낸 고전 스펙터클로서의 《일리아스》를 접하고자 한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가장 날것의 《일리아스》라고 해 그저 가볍거나 선정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혹독하고 가혹한 핏빛 장면들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또 다른 모습에 주목한다. 적의 시체만큼 아군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전쟁이고 만약 오늘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그자는 삶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누군가의 상실 또한 견뎌내야 한다. 슬픔과 회한 역시 전쟁의 속성임을 상기시킨다.

책은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싸운 뒤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길 거부하는 아킬레우스로부터 시작한다. 점점 그리스 측이 불리해지자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전쟁에 참여하지만, 결국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목숨을 잃는다. 그 후 책의 서사를 이끄는 건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리아스》에 ‘분노의 서’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이면에는 크나큰 슬픔과 회한이 있으며 독자는 바로 슬픔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공감하게 된다. 수많은 감정이 농밀하게 형상화돼 이곳저곳에 포진해 있다. 그 결을 따라 진득한 페이소스가 번져오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 또한 지녀왔으나, 계기가 없다면 드러나지 않을 온갖 감정의 행태를 헤아려보고 뒤집어보며 그 안에 자신을 들여놓게 된다.

저자 존 돌런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에서 발간된 영문 격주간지 <디 이그자일The eXile>의 공동 편집인으로 있으며 군사전략과 세계사 속 전쟁사를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팟캐스트 ‘라디오 전쟁 덕후 Radio War Nerd’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이름난 전쟁 덕후다. (문학동네/1만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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