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본지 전문위원, 경희대 교수

근래에 들어와서 모일간지 신문기자가 일부 교수들의 조교 및 대학원 제자들의 연구비 착복문제, 교수들의 자제 한국 국적 포기 문제, 교수들의 부동산투기 문제, 아파트 투기 문제, 과열증권투기 문제, 정치권의 해바라기성 줄 대기 각종위원회 임명문제, 성희롱 문제 등등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을 조사했다고 전화하여 사교련(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회장을 지내신 분으로 일부 대학교수들의 양심의 파산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평가를 해달라고 하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그런 일부 몇몇 교수들 때문에 훌륭한 다수의 교수들에게 흠집을 끼치는 사례는 교수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되어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뒤 몇 날밤을 지새우면서 지난 ‘80년대의 권위주의 시대 운동권 학생들이 대학교수들을 일방적으로 유형별로 구분해 놓고 교수들을 괴롭혔던 일들에 대한 생각과 과거 고려대 원로교수이셨던 김성식 교수의 지성인의 양심파산문제가 생각이 들어 교수님들의 양심의 흠집이라는 글로 마음을 위로할까 한다. 당시 권위주의 시대 교수들의 유형을 무능교수형, 무용교수형, 어용교수형, 귀족`골프교수형, TV탤런트교수형, 성희롱교수형, 정치해바라기성 교수형, 바른말교수형, 인기교수형 등으로 구분하여 연구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고, 강의하지 않고 잿밥에 눈이 어두운 교수들을 양심의 파산교수라고 질타한 바 있다. 작금에 이런 양상들이 또다시 나타나 교수들 사회에 입방아로 오르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지성인을 대표하는 교수들의 양심의 흠집문제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바른 말, 쓴 말, 곧은 말 하는 교수들이 되라는 원로 김성식 교수의 일성이 들리는 것 같아서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봉사하는 많은 교수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교수로서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을 해본다. 교수의 양심은 왜 흠집을 같게 되었나, 교수의 밑바탕 재산은 양심인데 자본주의 시대라서 돈과 권력, 인기와 성 등이 제일의 가치 표준이라 생각해서 인가? 그것을 사기 위해서 양심을 팔아먹었다고, 아니면 양심이 없는 편이 나아서, 진실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교수 양심은 우리 사회 가치판단의 보편적 최고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제 대학교수의 양심을 회복시켜야 한다. 대학교수의 부도덕은 대학의 모든 발전방안을 무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대학교수의 부도덕은 물론 대학 그 자체의 교육기능에 결정적인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부도덕한 대학교수가 학생들의 인격을 가르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의 윤리도덕이 꼭 필요한 것인가? 대학세계가 도덕성을 상실할 때 일어나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좋은 대학개혁방안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몸 보다도 마음에 깊은 병에 걸린 학자에게는 백약이 무효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대학을 참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구성원들이 도덕적 기반을 정상화시키는 개혁방안을 동시에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수이지만 차제에 일부교수들의 양심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반성이 촉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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