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어려움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위기는 기회였다. 외환위기 시절이 그랬고, 2008년 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우리는 역경이 오면 국민들이 하나가 돼 극복하는 경험을 쌓아왔다. 그것을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한민족 특유의 위기극복 DNA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전 세계인들에게 원더풀 코리아(Wonderful Korea)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장금을 필두로 한 케이 드라마(k-drama)와 방탄소년단을 선두로 한 케이 팝(k-pop)이 전 세계인에게 신선한 충격파를 던지는 가운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등 4개부문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에 대한 놀라움과 경탄이 쏟아졌다.

선진(先進)이 문화적 우월성을 의미한다면 적어도 대중문화 차원에서 우리는 선진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적 흐름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있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 코로나19는 어땠는가?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를 가장 효율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세계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전염병 오염국으로 100여개 넘는 국가들로부터 입국금지를 당하며 손가락질 받던 때를 기억하면 지금 상황이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3개월만에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방역당국의 효율적인 대응과 의료진의 헌신봉사, 그리고 전 국민의 협력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제 선진국 유력 정치인들이 자국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논하는 데 한국의 성공 사례는 단골로 초대된다. 일본에서조차 노벨상 수상자가 아베총리 면전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방식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외신을 보면서 은근히 국격의 상승을 느끼는 것이 머쓱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로 우리나라가 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의 제1 존립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전쟁은 물론 질병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 일단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우리는 지구촌 최고 선진국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했다. 정상적인 생활로의 한 단계 진전이다.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차단돼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위기탈출의 방편이기 하지만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정상을 의미한다면 뭔가 불안하고 찜찜하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를 말할 때마다 뉴노말(new normal)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정상은 정상인테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란 말이다. 정상화(normalization)란 말이 사라지고 뉴노말이란 용어가 사용되는 저변에는 이전 상태로 되돌아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이런 인식은 사회 전 부문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교육부문에 있어서 더하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이전에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미래교육에 대한 여러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 왔다. 더불어 교육당국의 유연한 정책변화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고 대학 또한 정해진 룰 안에서 제한된 개혁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서의 자율적인 노력에 한계선이 그어진 상태에서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됐다. 학생들은 질 낮은 원격수업에 반발하며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에 또 하나의 혹이 붙은 모양새다. 교수는 교수대로 익숙하지 않은 원격수업에 나서느라 강의실 교육의 몇 배의 노력을 쏟고 있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원격수업으로 대변되는 미래교육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의 혼란은 코로나19가 예기치 않게 찾아오면서, 발생한 필연적 현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오프라인 교육기관의 원격교육 비율 20% 상한제 같은 규제는 당장 철폐해야 한다. 교육부는 2018년 10월 ‘일반대 원격수업운영 기준’을 마련하여 공표했다. 교육부는 이 기준에서 원격수업 교과목의 경우 총 교과목 학점 수의 100분의 20을 초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전체 수업의 20%까지만 원격수업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대학의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해도 될 것을 고등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코로나19는 교육부의 이 기준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이 시간 교육당국은 왜 미네르바대학에 전 세계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지, 왜 애리조나주립대가 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온라인 교육의 문호를 개방하며 학생들을 선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깊게 성찰해야 한다. 대학들을 얽어맨 족쇄를 풀어야 대학이 살고 나라도 산다.

코로나19 극복과정은 우리 내면에 연면히 흐르고 있는 위기극복 DNA가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대학위기의 시대, 뉴노말 시대에 우리 대학인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대학교육진흥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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