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아 아주대 인권센터 학생상담소 책임상담원

김영아 아주대 인권센터 학생상담소 책임상담원

버스를 타면 “코와 입을 가린 채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불필요한 대화와 통화는 가급적 자제해 달라”는 방송이 연이어 나온다. 이제는 익숙한 안내방송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준수사항을 열심히 따른다. 기침과 재채기를 최대한 조심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종종 이런 규칙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느 날 출근길 아침, 앞자리의 한 손님이 마스크를 모두 내린 채 전화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이 그랬대” 버전의 대화가 계속된다. 보이지도 않는 시선으로 앞자리 손님을 따갑게 노려본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내 시선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눈빛을 보내지만,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몇 분이 흐르고 통화가 끝나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곧 카드를 발급해달라는 통화를 줄줄이 한다. 아침부터 그런 전화가 가능한가. 그것도 신기하다. 두 번째 전화 소리에 순간 ‘아, 이 사람은 안내방송 따위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절 따위는 없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짜증과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정말로 그랬다가는 내가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과 이 시국에 그런 대화 자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으로 불쾌한 감정을 꾹 하고 눌러 참는다. 출근을 해서, 또 집으로 돌아와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화가 나지만 버스 안에서 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보다 감정의 강도와 크기는 꽤 줄어들었다.

우리는 매 시간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생각만으로 유쾌하고 불쾌한 감정 변화가 모두 가능하다. 이런 감정의 상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도덕적이거나 이성적 판단을 덧붙이게 되면 고통이 시작된다.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이를 억압하거나 회피하면,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 안에 ‘깊은 호수’를 만든다. 그러다 화가 나고 무기력한 어느 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고 혼란스러울 때 그 호수에 풍덩하고 빠져 버리게 된다. 누가 밀었는지 내가 스스로를 던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감정조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표현할 것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한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다만 감정의 호수로 잠깐씩 산책을 나와 발도 담그고 울기도 한다. 나의 호숫가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지만 가장 큰 줄기는 슬픔과 웃음이다. 그게 필자가 생각하는 인생 감정이다. 삶은 자고로 “웃픈” 거라고.

우리는 각자의 호수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 얼굴을 비춰보고 물의 깊이나 온도가 어떤지 느껴볼 수 있다. 흙을 가져와 메울 수도 없으니 마음 안의 호수 주변을 꾸며 보기라도 하자. 호수에 풍덩하고 빠져버릴 것 같은 날에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거나 목욕하기, 숨이 차도록 운동하기, 큰 소리로 음악듣기, 좋아하는 음식먹기 등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법도 좋다.

가끔 나만의 호수 앞에 걸터앉아 쉼을 가진다. 말 그대로 오늘 하루 느낀 감정을 떠올리며 호수를 상상한다. 그 호수를 그저 바라본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요즘은 이 호수가 쓸쓸하다. 오늘은 발라드 몇 곡을 들어야겠다. 그게 나만의 조절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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