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손 댈 건 손 대고, 밝힐 건 밝혀야…”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한국대학신문 특별취재팀이 대학 교수 여론조사와는 별도로 ‘안기부 X 파일’ 파문에 대한 각 대학 주요 보직교수와 교육계 반응을 긴급 점검한 결과 주요 대학 보직교수들은 언론 보도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의견을 제시하는 데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들을 보였다. 그러나 “사실 관계를 철저히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 보직교수들은 먼저 불법 도청보다는 불법 로비에 강조점을 찍는 분위기였다. 이영준 경희대 법대 학장은 지난 27일 “도청 자체가 국가 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적인 일이고, 공소시효 문제 등이 걸려 있어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입장이 애매하다”면서도 불법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학장은 “도청 테이프 수가 수백에서 수천이라고들 하는데 이번에 그 중 하나가 공개돼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과거에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불문율처럼 자행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특정인만 갖고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그것만이 사태의 전부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건국대 법대 학장은 “불법 도청이 문제냐 로비가 문제냐는 점에서 언론 보도가 갈리는 것 같은데 향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불법 로비가 더 문제”라고 밝혔다. 이학장은 “도청이야 국가 기관이 못하게 하면 그만이지만 재벌이 로비하고 돈 대줘 정치권력 만들어 내고, 거기다 언론하고 연계돼 있고…. 미래지향적 한국사회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 기회에 로비 문제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며 “법적인 평가는 현행법 잣대로 봐야겠지만 X파일에 나오는 중요한 사실 관계는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기헌 덕성여대 기획처장은 “불법적인 도청으로 인해 밝혀진 것이긴 하지만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사회가 잘못된 것이고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하성 경남대 기획처장 역시 “IMF가 온 게 정경 유착이 큰 원인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 언론까지 가세했다는 점에서 공분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박기갑 고려대 학생처장은 “물론 대선자금 지원과 관련한 정경유착에 대한 부분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불법 도청에 더 무게를 실었다. 박처장은 “불법적으로 얻어진 내용이 법적 증거로 활용된다면 문제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현재 여론은 삼성 측이 잘못됐다는 쪽에 있지만 국가기관의 잘못이 더 크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언론 보도 형태에 대해서는 다소 입장이 엇갈렸다. 김유경 한국외대 홍보실장은 “(타당하고 인정된 방법이 아닌) 편법에 의해 확인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 자체가 언론윤리 측면에서 볼 때는 공적 매체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사실 관계 확인과 사회적 파장을 충분히 살펴보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대학 한 처장은 “언론은 할 바를 했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기헌 덕성여대 기획처장은 “사건에 연루된 홍석현 주미대사도 사퇴를 하는 등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 것처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오너로서 어떤 식으로라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소재 사립대 한 처장은 “지금 이건희 회장의 사퇴를 따지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이 돈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소환하라” “물타기식 검찰 수사는 국민 저항 불러올 것” ■ 교육 시민단체 반응 종합 교육시민단체들은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정치권과 경제계, 언론계 등 정ㆍ경ㆍ언 유착의 최종 결정판으로 규정하고,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와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김상곤)은 27일 성명을 내고 “검찰은 삼성그룹의 금권로비와 언론의 불법적 정경유착 등을 낱낱이 밝히고 스스로의 환부까지 도려내야 한다”며 “이를 회피할 경우 더 큰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수노조는 이날 “불법 도청 책임자는 처벌돼야 하며, 정ㆍ경ㆍ언 유착과 비리 척결 등 공익을 위해서는 도청 테이프의 녹취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삼성그룹의 불법로비 자금 제공과 관련,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 이회창 전 신한국당 대표 등 20여명을 고발한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는 지난 26일 “불법도청과 유포 행위는 물론 불법 로비자금 제공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검찰이 이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시위나 시국사건 등을 다루는 공안부에 배정하자 사건의 중요 축인 불법로비 자금 제공 부분을 무시하거나 물타기 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삼성그룹과 같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재벌의 불법 정치 자금 제공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검찰이 재벌총수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공동대표 이필상)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삼성그룹의 허울뿐인 사과가 아니라 사건의 진실”이라며 “삼성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정치권과 검찰에 검은 돈을 제공했는지,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사건의 핵심 당사자가 누구인지 먼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 이석태)도 전날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이건희 회장이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 등을 매개로 관여한 불법적인 정·경·언 유착의 최종 결정판”이라며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소환해 철저한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비롯, 사건의 본질 규명’촉구 ‘재발방지 위한 의식 개혁과 시스템 개선이 관건’ ■ 국회 교육위원회 한편, 잇따른 ‘X파일 공개’ 논란과 관련 국회 교육위원회 등 정치권도 이번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 삼성의 연루 과정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열린우리당 소속 교육위원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보수 세력이 연대해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의 힘을 빌어 특정 대통령을 추대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가진데서 비롯된 사건으로 평가하며 사건의 처리 방향에 예의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은 “이번 사건은 특정 기업이 불법 대선자금 조성 등을 통해 정치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불법 도청이나 증인의 증언 여부 등 지엽적인 사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천명한 만큼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건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과거 특정 재벌 기업이 개발연대 시대의 미숙한 시장 경제체제하에서 저지른 불행한 일”이라며 “과거가 들춰지는 것도 문제지만 비리의 원인을 덮어두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문제는 기업경영과 지배구조가 얼마나 투명한가에 달려있다“며 ”성숙한 시장경제체제를 위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특히 삼성이 언론을 통해 정치권력에 깊숙이 개입한데 대해 “이는 과거에만 있었던 일로 여기지 않으며 지금도 그들은 정·관계 인사는 물론 언론계까지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는데 있다”고 말했다. 최의원은 그러나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한다는 일부 요구에 대해 “개인이 물러난다고 해결되리라고는 보기 힘들다”며 “지금부터라도 이런 관행을 계속해 나가려는 의식과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한국대학신문 특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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