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

서울대학교가 정시에 교과평가를 반영하기로 한 발표를 두고 ‘묘수’라고도 하고 ‘꼼수’라고도 하는 등 의견이 갈리고 있다. 서울대가 2015학년 대입부터 수능점수 100% 전형을 활용하다 교과 성적을 반영하는 교과평가를 정시에서 한다는 것은 ‘일대 전환’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입에서 학교 성적을 반영하도록 권장·강권한 것은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랫동안 이용돼 왔다. 이미 1980년대 교과종합등급을 반영했고, 이를 과목별 등급 등으로 개선해 반영한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단지 이번 서울대 발표에는 ‘교과 평가’를 반영한다는 표현이 쓰였다. 성적을 정량화해 반영하는 방식이 아닌 교과 이수 상황을 정성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내신 반영이 아닌 교과평가란 용어는 서울대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간 고등학교 교실은 3학년 2학기가 되면 급격히 붕괴했다. 학생들은 각자 수능 과목 공부에 치중했다. 수시 면접에 응시해야 하는 학생들은 면접 준비를 이유로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2018년 대입제도 개선 시기에 수시·정시를 통합해 대입전형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이유로 공론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서울대의 교과평가는 3학년 2학기 수업이 정상 운영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서울대뿐 아니라 몇 대학이 동참한다면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안을 두고 학습 부담을 준다는 등의 주장으로 상황을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3학년 2학기라는 황금 시기를 수능 문제를 푸는 시간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정원의 10%를 추천제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선발토록 하는 정부의 대입정책은 고교 학점제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대입 정책에 따라 쉬운 과목이나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을 학생들이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대입정책은 진로 경로에 부합한다거나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이나 수능 과목을 위주로 과목을 선택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서울대가 교과 평가를 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점들도 일부 완화될 수 있다. 예컨대 ‘수학Ⅱ를 잘 했지만, 미적분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과 ‘수학Ⅱ를 잘 했지만, 미적분을 이수해 성적이 좋지 않은 공대 지망 학생’ 중 누가 대학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될 것인가? 교과 성적이 나빠질까봐 미적분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좋은 성적을 기반으로 학생부교과전형을 통해 진학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이라면 그 과목이 필요한 학과 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이미 동국대가 2022학년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에서 정성적인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서울대가 정시에도 그런 상황들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도 1단계에서는 2배수를 수능 성적으로 선발하기에 수능 성적이 절대적이다. 교과 평가에서 A·A나 A·B를 받을 수 있는 학생이라면 수시에 이미 합격했을 것이다. 이를 두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라고 많은 분들이 얘기한다. 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이 비례한다는 것도 이미 분석돼 있다. 정시 지원자는 대부분 B·B부터 B·C 사이의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지원자 간에는 2~3점 차이가 날 뿐이다. 

2~3점도 아까우면 어려운 과목을 회피하지 말고, 수업에 잘 참여해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에 학습 상황을 보여주고, 3학년 2학기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면 되기에 우려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한 학생이라면 대부분은 수시에 합격할 것이다. 

어려운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은 전문교과를 이수하라는 말이 아니다. 보통교과 과목 중 어렵다고 알려진 과목을 잘 이수하면 될 일이다. 어렵다고 알려진 과목들은 대부분 수능 범위 과목 가운데 응시자가 적은 과목이다. 그간 서울대는 꾸준히 보통교과 수준의 학습을 성실히 할 것을 강조해 왔다. 어려운 과목의 범위가 보통교과라는 점을 믿어야 한다. 

2~3점은 수능으로 보면 2점짜리나 많게는 3점짜리 한 문항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서울대 일반전형은 80점에서 최고점과 해당 수험생의 점수를 뺀 성적을 차감해 수능 성적을 정한다. 수능 5점 차이는 곧 총점 5점 차이를 의미한다. 지난해 30명을 선발한 서울대 의예과의 합격자 최고점과 최저점은 5점 가까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과 평가 때문에 합격할 수 없는 서울대 모집단위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한편, 서울대는 2022학년부터 탐구영역 성적을 보정 없이 수능 표준점수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다. 학생이 선택한 탐구영역 과목에 따라 원점수 만점이라도 받을 수 있는 성적에 차이가 있으므로 서울대 정시의 합불 열쇠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쥐고 있다 하는 것이 맞다. 지난해 사회탐구의 경우 표준점수가 높은 두 과목인 경제와 법과정치를 선택해 만점을 받았다면 139점이었지만, 윤리와사상과 생활과윤리를 선택했다면 같은 만점인데도 127점으로 무려 12점 차이가 났다. 과학탐구도 마찬가지다. 지구과학Ⅰ과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144점, 물리Ⅰ과 지구과학Ⅱ를 선택했다면 132점으로 동일한 만점인데도 표준점수는 12점 차이가 났다. 표준점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가공해 대학에 제공하는 것이기에 이 차이를 서울대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서울대는 ‘서울대가 선발하려고 하는 학생들’ 나아가 ‘대학이 선발하려는 학생들’이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공부, 깊고 넓게 사고하는 공부를 하는 것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대학입시를 설계해 왔다. 2000년 입학본부를 설치해 정성평가에 대해 연구한 역사를 서울대의 ‘학생부종합전형안내’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조치도 고등학교에서 아까운 마지막 학기에도 학생들이 학업 역량을 기르는 데 힘을 쏟을 수 있도록, 3학년 2학기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도록 지원하는 조치란 점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이번 발표문의 마지막장에는 ‘대교협 심의 및 승인 결과에 따라 추후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덧말이 붙어 있다. 정시에서 정성평가를 하면 안 된다는 등의 비상식적인 이유가 동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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