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파고와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우리 교육은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 대전환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몰고 온다. 위기는 과거 패러다임에 안주하는 가운데 발생하며, 기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잉태한다. 변화에 더딘 교육계에는 기회보다 위기 징후가 더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의 대응은 늦고 정책 당국의 지원도 미흡하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변화하는데 완고한 대학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교육체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의 혁신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은 대학 지속가능성에도 문제지만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경시할 일이 아니다.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대학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곧 미래사회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후 폐허로부터 시작해 매우 짧은 시간에 세계 경제규모 10위(2020년 IMF) 국가로 급성장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1조5867억달러로 전 세계 톱10에 진입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경이로운 성과는 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나라 교육 발달은 세계 교육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외국에서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교육개혁을 촉구할 때 마다 단골 메뉴로 거론했던 사례가 바로 우리나라 교육이다. 

하지만 외국으로부터의 과분한 평가가 우리나라 교육의 우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양적으로 보면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지나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어 가히 세계적이라 할만하다.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청년(25세-34세) 대학진학률이 69.8%로 최상위권(2위)에 속해 있다.

다만 질적인 측면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타임즈 고등교육(THE : The Higher Education)이 선정한 세계대학평판 순위를 보면 상위 100위 안에 서울대(45위)  KAIST(61-70위권) 성균관대(81-90위권)만 이름을 올렸다. 연세대·고려대·포스텍은 200위권이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 대학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다. 양적으로 보면 세계적인데 질적으로 보면 세계적 수준과 거리가 멀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대학과 정부의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명제로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비대면교육의 급속한 확산으로 교육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 대학들은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점진적인 개혁은 ‘우물 안 개구리 우화’에 나오는 개구리 신세가 될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학 경영자들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애리조나주립대가 수년간 미국 혁신대학 1위를 고수하며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우뚝 서는 저변에 파괴적 혁신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얼마 전 2009년 발간된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 방안 연구’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연구진은 당시 우리 고등교육의 현황을 △낮은 고등교육 경쟁력 △입학자원의 감소에 따른 초과공급 △자율과 책무 간의 딜레마 △대학의 역할과 기능 혼재 △사회적 적합성이 미흡한 대학교육 △사학 경영난의 가중과 부실 사립대학의 증가 등 6개로 요약했다. 

그들이 보고서에서 지적한 6개 특징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등교육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 교육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실시된 수많은 혁신정책과 대학의 노력, 그리고 투자된 재원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면 지난 10년 간 정부 고등교육정책은 우리나라 교육 상황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아니 오히려 더 발전하고 나갈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얽어맨 꼴이 됐다. 앞으로도 정부가 과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향후 10년도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정책당국에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한 때 교육부 폐지론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다. 현 정부에서는 교육부 기능 재편론이 논의됐지만 답보상태다. 교육부가 그대로 존치된다면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지난 10년간 수행해 왔던 정책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대전환기 정책당국에 바란다. 대학가의 파괴적 혁신을 용인하라. 우선 대학을 공공재에서 산업재로 보는 시각의 전환, 규제 보다는 자율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기 바란다. 또한 공급자 위주 정책에서 수요자 위주 정책으로 전환하고,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의 장애가 되고 있는 지금의 재정지원사업 평가시스템도 전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AI시대 아직도 이런 화두에 목매고 있는 고등교육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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