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대학선택12 편집장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배상기 대학선택12 편집장(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교수)
배상기 대학선택12 편집장(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교수)

필자와 필자의 두 아들은 라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는 라면을 가능하면 먹지 않으려 하고, 우리에게도 먹지 말라고 종용한다. 그런 아내 때문에 필자와 두 아들은 집에서 라면 먹을 기회를 많이 박탈당한다. 공식적으로 라면을 먹을 기회를 탐하고 있다. 20대 초반인 두 아들은 요즘 세대라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20대도 아닌데 라면이 좋다. 아내는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주면서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면을 강조한다. 막내아들은 라면이 실제로 건강을 해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완전식품이라고 맞받아친다.

그렇더라도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집에서는 라면을 자주 먹지 못한다. 다만 일요일 점심에는 공식적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두 아들이 어릴 때부터 필자가 일요일 점심에 라면을 끓여주면서 ‘라면데이’라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는 일요일 한 번만 먹기로 약속을 하고 동의를 받았다. 우리는 일요일 점심에 라면을 먹는 것을 즐긴다. 이번 일요일에는 어떤 라면을 먹을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하기도 하고, 선택의 기쁨을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필자가 일요일 점심을 ‘라면데이’로 정해 라면을 끓여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필자는 학교 일과 대학원 학업으로 매우 바빴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깨기 전에 출근하는 것이 당연했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저녁을 먹은 후에 퇴근하기 일쑤였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매우 적었다. 일요일에는 가족 모두 교회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집에 오면 함께 저녁 먹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돌아보며, 어린 두 아들이 경험하는 가족의 문화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그들이 성장하고 청소년 시기를 거치면서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했다. 두 아들이 성장해 각자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게 됐을 때 자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부모의 영향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어떤 것을 떠올릴까를 생각했다. 청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두 아들이 부모와 함께 한 활동이나 경험으로 무엇을 떠올릴지도 생각하게 됐다.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와 함께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매우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한 통계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 3분이 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의 또 다른 통계는 절반 이상의 청소년이 일주일에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한 시간도 채 안 된다고 했다.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적은 아이들은 스트레스와 욕구불만이 커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매우 바쁘다. 청소년이 되면서는 자녀들이 학업과 진학으로 인해 바빠진다. 그런 상황에서 한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됐다.

필자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니 어떤 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가장 좋은 시간은 일요일 점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건강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 라면은 필자에게 함께 자녀와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공유하는 매개체다. 외식도 좋지만 아빠의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라면 한 그릇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음식은 라면이 유일했기에 라면 데이란 명목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짧다. 청소년이 되면 바쁘고, 대학생이 되면 곧 둥지를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고,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그런 경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떠올리고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선물일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라면데이’에서 시작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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