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 본지 칼럼니스트,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북한 핵문제도 다시 국제적 관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핵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외신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라크전이 언제 끝날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해체를 명분으로 이라크 공격을 감행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라크사태 이후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쟁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에 비해, 현재 북핵문제는 IAEA에서 유엔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 더욱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부시정부가 강압적 방식에 의한 비확산 정책이 능률적이라고 평가할 경우 한반도는 북핵문제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1994년 미국은 영변 폭격 일보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고 최근 다시 그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과 정황으로 볼 때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이 미국의 타겟이 될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상황은 비관적인가? 우리는 그저 강대국의 오만에 분노하면서도 지켜보는 도리 밖에 없는가? 북핵문제는 분명 위험한 문제이지만 그 해결은 아직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당사국들의 행동에 따라 평화적 해결과 폭력적 해결, 두 가능성은 다 열려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양쪽이 대화를 통한 해결 방식에 일차적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부시 정부는 북한이 이라크와 달리, 탈냉전기에 들어서 타국을 침략하거나 테러를 지원한 적이 없으며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강조해왔다. 물론 미국의 이런 입장은 최근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 들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영변 핵시설 재가동 등에 상응하여 모든 해결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비평화적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시사한 첫 발언이다. 양국은 또 대화에 임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미국은 북핵문제가 동북아의 안정과 국제사회의 비확산 노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핵 공격 (위협) 가능성으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에 북-미 직접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양국이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또 그렇게 풀어야 할 조건에 놓여 있다. 어쩌면 대화 방식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은 자존심 대결, 기싸움의 형국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정일정권은 미국 첨단무기의 위력과 부시정부의 강도 높은 반(counter)확산 전략에 맞설 때 체제 생존까지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이라크사태 직후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은 한-미 동맹관계의 유명무실화는 물론 미국 경제와 부시정권에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사태 이후 북핵문제가 곧바로 위기 국면으로 진입한다기보다는 북한과 미국의 상호작용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그 마지노선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제재 움직임이고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재처리시설 재가동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실 최근 북핵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부시정부의 핵선제 공격 독트린과 ‘악의 축’ 발언이다. 그에 대해 북한은 미 행정부에 의회가 비준하는 불가침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고 부시 정부는 대통령의 담보 서한 정도로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대화와 불가침 등 여러 측면에서 양국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 일방적 행동을 자제하고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 북-미 양국을 잘 아는 한국, 중국 등의 중재 역할과 시민사회의 반전 여론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