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인사들 "종전 이후 더 중요" 의약품 보내기 등 지원사업

4월 9일 저녁 이후 '바드다드 함락'과 '전쟁 조기종결'을 전망하는 외신들의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그간 '반전·반파병 운동'을 주도해 온 시민사회단체와 문화계 인사들은 "미국의 막가파식 전쟁"에 분노하면서 "바그다드는 아직 함락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또 오는 4월 12일 국제반전평화공동행동의 날에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반전시위를 계속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의약품 보내기 운동 등을 포함해 전후복구를 위한 인도적 지원활동 등을 모색하고 있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개전(開戰) 이후 지속적으로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한 사회각계 인사들은 이라크 수도에 진주한 미군 탱크와 미 전투기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허물어진 천년고도 바그다드의 건물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화예술계 "자본주의에 기댔던 삶의 태도 반성해야" 반전시 '섬광과 참혹'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질타한 바 있는 시인 김정환(50)은 "바그다드는 아직 함락되지 않았고,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탱크 몇 대와 군인 수백 명이 대통령궁에 들어가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린 것만을 두고 종전을 운운할 수 없으며, "일말의 정당성도 없는 이 전쟁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설득시키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계속 될 것"이라는 게 김정환의 설명이다. "조지 부시와 딕 체니(미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국방장관), 폴 월포위츠(국방부 부장관) 등 소수의 전쟁광과 군산복합체가 안정적인 원유수급을 위해 일으킨 명분없는 전쟁의 치욕을 함께 뒤집어 쓸 미국 사람들도 불쌍하다"고 덧붙인 김정환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가장하는 미국의 태도는 막가파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다음 침공대상이 북한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정환은 "보통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오히려 일부 언론이 부추기는 인상을 받는다"며, "미국의 군사력을 움직이는 동력은 자국의 이익확본데 북한에 이라크의 석유만한 이익이 있겠나"라는 말로 북한침공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반전집회를 총괄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62) 이사장 역시 "폐허가 된 바그다드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는 말을 먼저 전하며 "비록 후세인이 독재자였다손 치더라도 자국 민중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닌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이라크에 친미 허수아비 정부가 들어설 것에 대한 염려에 다름 아니었다. 또, 염 이사장은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는 이라크에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미국의 침략이 다른 이유에서 시작된 것임을 암시한다"며 "정치적 자기결정권은 물론, 생의 보금자리까지 빼앗긴 이라크 국민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한국전쟁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염무웅 이사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해야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전쟁의 비극은 또 다시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한반도 위기와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여전히 문제" 한편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는 10일 오후 2시 서울시청 맞은편 신동아화재 건물 2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파병안 국회 통과와 반전평화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특히 리영희 선생이 기조발제에 나서 미국의 이라크침공 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전망을 내놨다. 리영희 선생은 "21세기 미국의 20, 30년후 혹은 50년 후의 중장기적 목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며 "비록 중국을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미국은 이라크에도 핵무기니 대량살상무기니 하며 전쟁의 구실을 붙였듯이 동북아에서도 북한을 빌미로 한-미-일간 실질적, 공격적 군사동맹을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 선생은 또 "중국의 목적은 대만을 수복하는데 있고, 대만은 정치 경제적으로 이미 미국에 예속돼 있으므로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을 맞바꾸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며 "한민족이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통찰력을 가져야 올바른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는 요지의 전망을 밝히기도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라크 침공이 끝나도 미국의 패권주의가 유지되는 한 전쟁은 계속된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위기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 전은주 평화여성회 사무국장은 "전쟁이 빨리 끝나 희생자가 줄어든다는 의미에서는 바그다드 함락이 다행일 수도 있지만 전쟁이 완료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침공을 통해 무장력을 과시한 미국이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전쟁"이라는 것이다. "장기전이든 단기전이든 (바그다드 함락은) 예정됐던 일이고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는 견해를 내놓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이번 침공 자체가 세계전략화에 의해 진행된 것이니 한반도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며, "파병안 처리를 계기로 반전평화모임 의원들과 북핵위기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혜진 보건단체연합 기획부장 역시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입장이다. 그는 "CNN의 일방적인 보도만으로는 전쟁이 끝났다고 믿을 수 없다"며, "이라크의 격렬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 기획부장은 "실제로 침공이 끝난다고 해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이나 북한에 대한 대외 압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과제로 남았다. 이번 반전운동을 계기로 국제적 연대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기사제공=오마이뉴스 홍성식, 권박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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