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 월간 에머지 발행인

반골(反骨)이란 것은 권력에 대하여 척력(斥力)을 일으키는 질량(質量)일 것이다. 내친 김에 끝까지 뉴톤의 만유인력 공식을 흉내 내어 말하자. 이 척력의 크기는 권력의 질량과 반골의 질량의 적(積)에 비례하고 그 두 사이의 거리(의 자승)에 반비례한다. 사람이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그 앞 단계의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양과 기술을 기르기 위해서다. 교양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의 고독한 역정에서 자기와 남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능력이다. 기술은 의식주, 그리고 교양에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획득하는 힘이다. 조선시대 같으면 교양, 특히 고급 교양은 양반만의 것이고 기술은 상민의 것이었을 것이다. 대학이 어떤 학생에게나 교양과 기술을 이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이다. 사회가 어떤 사람이라도 기술이 없이는 배길 수 없게 된 것도 민주주의적이다. 기술은 상품화된 노동으로 나타난다. 교양과 기술은 둘 다 지식의 범주에 든다. 그런데 사람의 어떤 연령, 어떤 환경에서는 지식이 커지면 거의 반드시 반골의 질량도 증가한다. 대학생 때가 그런 연령이고 대학이 그런 환경이다. 대학은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지식과 반골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점과 관계되어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학이 그 앞 단계의 학교와 다른 것은 가르친다는 말의 뜻이 달라지는 점에 있다. 내 경우 기억으로는 고등학교까지는 선생은 가르쳐 '주고' 학생은 배워 '받는' 수수(授受)의 비중이 꽤나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이 비중은 학생의 나이가 들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급속도로 줄어든다. 아마도 글자나 음표 등 자연에는 없는 기초적인 인공적 기호를 배울 때까지가 수수적(授受的) 공부의 절정기일 것이다. 대학에서는 선생은 오히려 배우의 그것에 가까운 역할만 한다. 대학 교수가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좋은 교수는 감동을 준다. 대학생은 그 곳에서 관객이다. 혹은 객석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대학생이 쌓는 지식은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교수가 준 것을 받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에 지식을 주고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행 중에 같은 차를 타고 가다가 경험 많은 승객으로 받는 지식과 같이 우연히 얻는 것일 뿐이다. 다만 대학 교수에게는 성적을 매기는 기능이 있다. 나는 이것이 대학의 가장 큰 기능이라고 보고 있다. 대학은 시험을 치고 숙제물을 내어 교수로부터 성적을 받아 보려고 다니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교수는 자기가 가르쳐 '준' 것을 얼마나 배워 '받았나' 하는 것을 성적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치는 분야에 학생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가를 성적 매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마도 기술 과목은 교수가 학생에 배워 '주는' 일이 더러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기술 또한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 특히 직장에 취직을 한 다음 주로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과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이다. 나는 50년대에 4년, 60년대에 2년, 70년대에 1년, 90년대에 2개월 동안 이런 저런 대학에서 학생으로서 학점을 이수한 경험이 있다. 나는 이런 대학생 기간 중 농업, 공업, 상업 등 기술 관련 과목은 이수한 적이 없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수 과목은 없지만 반골의 질량을 수양(修養)하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훌륭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매우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대학 생활을 거치지 않고 좋은 반골이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반골은 비평적 정신과 창조적 정신의 합계인 듯하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 문화적 권력, 경제적 권력에 대한 척력으로 나타난다. 반골을 기르지 않으면 대학 생활은 실패다. 반골이란 것은 자본주의를 만나면 자본주의를 의심하고 사회주의를 만나면 사회주의를 의심하는 철저함이다. 선(禪)불교에 다음과 같은 화두가 있다고 들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반골은 이를테면 전쟁도 비판하고 반전(反戰)도 비판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어느 한 쪽에만 가담해 버리면 이미 반골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이다. 모든 권력은 자신을 정의(正義)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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