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중심가 지하철 안. 머리를 삭발한 젊은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연설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게다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예전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재건하자는 내용으로 연설을 한다면...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을 막론하고 한국인이라면 얼굴을 찌푸리며 쳐다볼 일들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이런 상상도 못할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모스크바에 살고있는 한국인 교민과 유학생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이면서도 순수 러시아 민족이 아닌 민족들이라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스킨헤드라고 불리는 극우 민족주의 젊은이들 때문이다. 사실 스킨헤드라는 이름이 불리기 시작한 곳은 독일에서부터이다. 2차 대전 패배이후 빠른 반성과 과거 청산 작업 속에서도 암암리에 생겨난 신나치주의의 젊은이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전쟁당시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들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러시아에서는 최강국 구 소련의 공산주의 향수와 겹치며 모스크바와 상트-뻬테르부르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원조 격인 독일보다 그 수가 더 앞지른 상태이다. 히틀러의 생일인 4월 19일을 기점으로 외국인들의 경계는 시작된다. 4월초까지 추운 모스크바의 날씨는 4월 중순이 되면서 풀리기 시작하고, 여기에 쓰고 다니던 털모자들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벗겨지면서 삭발된 머리가 드러난다. 그리고 4월의 그들의 축제가 시작되고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모스크바와 상트-뻬테르부르크를 제외하고는 순수 러시아 혈통이 거의 없는 다민족 국가이다. 아랍지방과 경계를 하는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아랍 혈통의 민족, 중앙아시아로부터의 고려인들, 몽고인, 중국혈통까지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인 그들의 텃세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또, 러시아 연방국중의 하나인 체첸 공화국의 독립전쟁이 지속되고 최근 몇 년간의 테러까지 겹치면서 그들 민족주의의 발악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하기에 외국인들은 이 날만큼은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는 등의 대책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대사관에서도 역시 조심하라고 공고하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대사관 역시 스킨헤드의 공격을 암시하는 ‘떠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라는 내용의 메일이 잇따르고 있어 교민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관광자원에도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이 외국인들에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러시아 해외통신원=엄재익<모스크바 항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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