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 본지 전문위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홍익대 겸임교수

매주 한번 대학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강의실 복도 앞에서 서성거리며 학생을 기다리는 것이 다반사 이다. 강의가 저녁 시간대라 수업 중에 허기라도 면하고 갈갈한 목이라도 축일 수 있도록 물 한 병을 사 들고 강의실을 찾는다. 물론 강사대기실이 있지만 모두가 다 객(客)이라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앉아서 차분히 강의 준비를 할 분위기도 아니어서 조금 일찍 강의실을 찾는다. 시간강사에 대한 배려와 강의실 분위기는 물론 대학마다 차이가 있지만, 시간강사들이 갖는 공통점은 대학이라는 공간적 개념보다는 강의라는 시간적 개념에 얽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주체로서보다 객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상아탑에서 시간강사가 과연 학문후속세대로서 응분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대학의 주체로서 강단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먼저 금전적 대우에 대해서는 과히 일용 잡급 수준이라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액면 그대로를 솔직히 밝히지 못할 만큼 강사료가 소액에 불과하다는 것은 대학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면 강의자로서의 대우는 어떠한가?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전전하면서(그나마 이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한 학기 단위로 강좌를 떠맡는 소위 “떠돌이 지식 보부상”에 불과하다. 이는 시간강사를 다소 자조 내지 폄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최고 학위소지자로서 또는 전문지식인으로서 전임교수와 시간강사는 보수와 대우 면에서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강의 시간을 가르친다고 가정할 때 보편적으로 시간강사는 전임교수 임금의 1할도 채 받지 못한다. 만일 지식수준이나 강의의 질적 수준이 이 정도의 차이가 난다면 차등대우가 합당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간강사의 학문적 역량과 열성이 전임교수와 동등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강사는 단지 전임교수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갖은 불평등 대우와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현역 전임교수들도 시간강사 시절이 있었건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이 시간강사의 부당한 대우와 불이익에 “나도 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네...”라는 식이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시간강사를 장차 전임교수 자리를 미끼로 마음대로 시켜 먹을 수 있는 “밥”으로 생각하거나, 값싼 강사료를 지급하고 많은 등록금을 걷어 들일 수 있는 “봉”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부 시간강사는 그나마도 이번 강의를 맡은데 대해 감지득지하면서 다음 학기 강의를 보장받기 위해 전임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더욱이 사제지간이나 선후배지간일 때는 시간강사는 그들의 “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에 하나 그들의 눈에 잘못 보여 “그대는 아니야”라는 도장이 찍히는 날엔 장래 전임교수 자리는 고사하고 다음 학기 시간강사 자리도 얻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기존 학문세대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서 전임교수라는 “철밥통”을 차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 교수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며 병폐라고 볼 수 있다. 학문의 능력과 학자로서의 소양보다도 연고와 정실에 의한 시간강사 채용과 길들이기 과정을 거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충실한(?) 친위대”를 선발하여 그들의 기득권세력에 편입시키는 관행이 우리 대학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은 대학의 발전과 국가경쟁력 향상을 저해하는 커다란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작년도 통계에 의하면, 우리 대학에서 시간강사수가 전임교수수를 능가하였으며 이들의 강의 전담률이 거의 40%에 이르고 있다. 대학원의 경우는 대학(학부)보다도 더욱 심각하여 시간강사가 약 절반에 이르는 강의를 전담하고 있다. 대다수의 우리 대학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시간강사를 “밥”과 “봉”으로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지식과 임금을 직․간접으로 착취하고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고 당연시 하며 양심의 소리마저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 고위 교육 관료를 비롯한 대학행정가와 교수들이여! 시간강사들을 밥이나 봉으로 여기지 말고 미래 학문을 이끌고 나갈 전문지식인으로 생각하여 정당한 보수를 주고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주기 바란다. 그들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대우해 주어야 하는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태까지의 잘못된 관행의 틀을 깨고 이들을 후속학문세대로서 또한 학문의 동반자로서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포용해 주길 바란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계절을 맞아 시간강사들의 대우에도 놀라운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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