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본지 전문위원

각 대학에는 고시반이란 것이 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대부분 학교당국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사이비 고시반이 있다. 언론고시반이다. 언론고시란 것은 없는데 언론고시반은 있기 때문이다. 언론고시는 서울의 거대 언론사의 채용시험을 일컫는 말이다. 결코 국가가 치르는 과거시험은 아니다. 단지 고시만큼 어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언론고시에 합격해 서울소재 거대 언론사의 기자나 프로듀서로 진출하는 젊은 학생들은 인재 중의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한국 최고의 인재를 뽑아가는 언론기업들이 대부분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재단이 작년에 실시한 수용자조사에 의하면 언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응답자는 전체의 46.1%였다. 만족한다는 비율은 25.5%에 불과했다. 이를 반영하듯 신문은 지속적으로 판매부수가 감소되고 있고, TV뉴스의 시청시간도 축소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수용자들의 만족도와 신뢰도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최고의 인재들로 채워진 한국의 언론이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고, 일부는 시장퇴출 위기에 까지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경영자로서 언론사주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확하고 공정한 뉴스보다는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사를 작성하고 뉴스를 제작하는 언론인에게도 책임이 크다. 독자와 시청자를 만족시킬 만한 양질의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원인 중 하나가 언론고시로 일컬어지는 언론사의 채용방법이다. 언론고시는 한국 언론을 병들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거대 언론사들은 국어, 영어, 상식, 논술 등을 채용시험의 가장 큰 기준으로 고려한다. 즉 공부를 잘해야 기자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암기력, 인내력, 복종심 등이 뛰어나야 한다. 대신 창의력, 호기심, 독립심 등은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인에게 정작 중요한 자질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매일 새로운 뉴스를 찾아내야 하는 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호기심이다.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내려는 욕구가 강해야한다. 고시반에 틀어박혀 예상문제집과 씨름하는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이 생길리는 만무하다. 언론인에게는 세밀한 관찰력도 필수적이다.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잘 표현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고시공부를 오래하면 할수록 이런 능력들은 퇴화되기 마련이다. 기자들은 또한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한다. 언론보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고시공부에서는 이런 훈련을 할 수 없다. 언론고시는 5공정권의 부끄러운 유산이다. 그전까지만해도 한국의 언론인들은 비록 박봉이었지만 기개와 명예로 버텼다. 그래서 해직을 무릅쓰고 독재정권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과 더불어 언론문화가 변질되었다. 소수의 언론사만 정권의 보호속에 살아 남았고, 그들이 시장독과점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얻으면서, 언론인은 졸지에 고소득 유망 직종으로 바뀌었다. 정권의 나팔수가 된 언론이었지만, 기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결국 언론고시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진실전달과 권력비판이라는 언론의 고유의 사명보다는 부와 권력을 좇는 젊은이들이 언론고시반에 들어가고, 언론계에 진출했다. 언론고시반을 통해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인재들이 한국언론의 중추가 되어가면서 한국언론은 도덕성과 경쟁력에서 모두 심각한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한국언론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한 한국언론은 쇠락의 길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인의 채용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언론고시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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