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붕괴에 맞선 메트릭스 전사들 때문에 정작 주춤한 건 최대의 성수기인 여름시즌의 영화계다. 다수의 작품들이 네오의 파워 앞에 뒷걸음질 쳤다. 그중 나운규 탄생 1백주년 기념작으로 만들어져 더욱 뜻 깊은 <2003 아리랑>의 개봉 연기 소식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애초 5월 23일 개봉 예정이었던 <2003 아리랑>은 <메트릭스 2: 리로디드>와의 맞 개봉을 불사하겠다는 투혼의 의지를 불 태웠으나 개봉관 확보에 실패, 테크놀러지와 크로스오버 철학관으로 무장한 ‘외세’에 미치광이 민족 열사가 광기를 억눌렀다는 뼈아픈 농담과 함께 30일로 개봉을 늦추었다. 소품 영화 지향 관객을 타깃으로 했던 <에블린>역시 같은 신세. 피어스 브로스난 주연으로 1950년대 아일랜드의 ‘부당한’ 가족법에 맞서 아이들과 한 가정을 이루는 부성애를 그린 이 영화 역시 5월 23일 개봉 예정이었던 스케줄을 한참 늦춰 6월 20일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폭염이 <메트릭스 2>의 독식 상차림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어정쩡하게 끝을 맺으며 3편을 예고한 메트릭스보다 마무리 확실한 납량 상차림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 초기부터 한국 영화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아온 <장화, 홍련>은 본격적인 ‘납량물’이다. <반칙왕> <조용한 가족> 등으로 코미디의 그로테스크한 운용 속에서 한국 가족사의 면면을 파헤치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여온 김지운 감독의 야심찬, 정공 호러물이다. 또한 로또 복권형 소시민의 욕망이 부질없는 이즈음을 웃어넘길만한 <역전에 산다>와 911 때문에 개봉이 늦춰지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던 스릴러 <폰부스>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출연: 임수정, 염정아, 문근영, 김갑수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6월 13일
◇ 스토리 : 수미(임수정), 수연(문근영)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 오던 날.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정도 이상으로 아이들을 반기지만 자매는 그녀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살게 된 첫 날부터 집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들은 환영을 보거나 악몽에 시달린다. 수미는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무현(김갑수)과 동생 수연을 손수 챙기려 들고, 생모를 똑 닮은 수연은 늘 겁에 질려 있다. 신경이 예민한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히 다투게 되고, 아버지 무현은 그들의 불화를 그저 관망만 한다. 은주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미가 이에 맞서는 가운데 집안 곳곳에 침잠해 있던 공포의 실체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 놓치지 말 것 : 이름 만으로 신뢰를 주는 감독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물며 이제 갓 서너편의 작품을 연출한 신참 감독임에야. <장화, 홍련>은 충무로에서 김지운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자 처음으로 연출하게 된 (장편)호러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화, 홍련>은 제작 단계부터 충무로 안팎의 화제작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일단, 사람들의 그러한 기대를 배신하지는 않은 듯 하다. 이미 익숙한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화, 홍련>은 할리우드의 청춘 호러를 어설프게 모방했던 기존의 공포영화들과는 확실히 차별된다.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 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은 이 둘을 적절히 조합,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포를 생산한다. 하여 <장화, 홍련>에는 끈적거리고 농밀한, 쿨하고 순간적인 공포가 공존한다.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감정을 극한까지 밀고 당기는 맛! 꽤 짜릿했다. GOOD: 배우들의 호연, 호러 영화로서 제 본분을 잊지 않는 영화의 충직함. BAD: 사건의 전모와 함께 드러나는 플롯의 엉성함. 조영주 기자 gobayasi@joycine.com 폰부스 감독: 조엘 슈마허 출연: 콜린 파렐, 키퍼 서덜랜드, 포레스트 휘태커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6월 13일
뉴욕의 잘 나가는 미디어 에이전트 스투 세퍼드(콜린 파렐). 어느날 공중전화 박스에서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뒤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스투가 무심코 든 수화기 속에서 "전화를 끊으면 네 목숨도 끊긴다"는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신병자의 장난이려니 생각했던 스투는 전화를 빨리 끊으라며 자신에게 시비를 걸던 남자가 그 음산한 목소리의 주인공의 총에 죽는 것을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게다가 그 익명의 저격범은 스투의 주소와 부부관계, 내연의 애인 등 사생활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공포에 질린 스투는 그러나 전화를 끊지도,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점점 저격범의 심리게임에 말려든다. 설상가상으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스투를 살인자로 오인, 그에게 일제히 총을 겨눈다!!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기 위해 촬영 내내 이어폰을 끼고 연기한 배우들 모두가 훌륭하지만 특히 신성 콜린 파렐의 연기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폰부스>는 사실상 원씬으로 처리된 영화인 만큼 연기에 있어 호흡을 잃지 않은 감정 처리가 관건이었다. 멜 깁슨, 짐 캐리, 윌 스미스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배역을 탐냈으나 고사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려운 역을 맡은 신성 콜린 파렐은 신인다운 패기와 또한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스투의 절박함과 갈등을 구체화 한다. 만약 <데어데블>을 보고 콜린 파렐의 연기에 실망하였거나, 그의 인기가 허명이라고 생각했다면 <폰부스>는 아마 필수 관람영화가 될 것이다. 역전에 산다 감 독: 박용운 출연: 김승우, 하지원, 강성진, 고호경 등 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6월 13일
어릴 적 골프 신동에서 지금은 불량인생을 살고 있는 증권사 영업사원 강승완(김승우). 눈치 없고 순진한 탓에 직장에서 왕따로 군림하고 있는 승완은 조폭 마강성(이문식)의 투자금을 부도된 회사에 몰빵한 죄로 쫓기는 신세이다. 결국 마강성에 붙잡혀 죽지 않을 만큼 맞은 날, 자포자기 심정으로 터널 속을 질주하던 승완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한 남자와 맞부딪힌다. 서로를 쳐다보며 각자 놀라는 두 명의 승완! 너무 놀란 승완은 그만 터널 벽과 충돌하는데...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인생 역전! 그 해답을 제시할 <역전에 산다>는 뒤바뀐 인생이 주는 묘미와 더불어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한다. 영화는 '판타지코미디드라마'라는 형식에 적당히 현란하며 적당히 코믹하고 적당히 이야기를 짜마춰, 작품을 이끌어간다. 전천후 연기자 김승우의 1인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순전히 김승우에 의존한 듯), 능천스런 연기와 감칠맛 나는 코믹멘트가 일품이어서 그의 연기 진면목을 다시금 가늠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특히 밑바닥 인생과 국민의 영웅 골프 스타, 두 가지 캐릭터를 오가며 맹활약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기대해 봐도 좋을 듯.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코미디 전문 배우 임창정이 까메오로 출연해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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