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초하(충북대 철학과 교수)

대학을 진학하는 이유가 많이 달라졌다. 정규대학 수가 200개를 돌파했고 전문대학도 160개가 넘는다. 같은 또래 인구의 70%가 대학을 가는 시대다. 대학입학이 곧 엘리트 진입 코스로 통하던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이 든다. 교육부가 고급문화로서의 학문을 관장하는 곳이 아니라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곳이 되었다. 대학은 이제 민중의 일원인 노동자를 배출하는 기관이다. 대학을 가는 것은 별난 지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균적 시민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대학진학의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그러나 대학의 위상과 대학교육의 임무가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학교육이 예전의 고등학교교육과 맞먹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세들을 한 사람의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소요되는 과정이 길어졌고, 그만큼 부모의 일반적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공교육비를 늘이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방향의 정책을 통해 개선해나가야 하며, 대학교육은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계속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교육은 국민일반의 삶의 질을 높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고급문화를 향수하고 생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터전이다. 대학과 대학교육을 환금성 기준으로 측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개혁'하라는 최근 정권들의 정책은 획일적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를 쫓아가기에 바쁜 얼뜨기 신지식인들이 비판적 성찰과 반성적 모색의 결핍을 고백하는 행렬과 상응하는 조치였다. 대학교육은 돈벌이 기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기업이 금방 부릴 수 있는 기술자를 배출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단순히 합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좁은 전공영역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대학생활을 채우는 것은 젊음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축소하고 폐색하는 일이 된다. 어떤 학문분야를 주전공으로 택하든 대학생이라면 철학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과정에서의 철학이란 개념들의 의미연관을 설명해내는 전공지식=기술력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비판적인 안목을 갖추고, 나 자신 속에 깃든 숭고한 인간성을 각성하며, 삶과 삶의 터전에 대한 창의적 상상을 자아올리고,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대학 철학교육의 본령이다. 대중 대학교육 시대에도 여전히, 대학생은 같은 세대 동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시대의 아픔과 공동체의 화평에 동참하는 인간으로 자라나야 한다. 나의 행복을 최대치로 추구하되 동시에 시대-사회의 공동선을 지향하는 인간형을 대학생은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선은 서로가 서로의 목적이 되고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삶의 보람과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남들에게 일깨우도록 하는 대학교육으로서의 철학은 전공지식의 전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전공시대, 아니 열린 전공의 추세에 상응하여 철학-논리학의 서적을 건너 다양한 삶의 현장을 교과서로 삼고, 전인류적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캠퍼스에서 얼굴을 맞대는 학생과 교수의 범위를 넘어 나와 다른 어떤 사람과도 감성과 의지를 소통하는 방식으로 삶과 앎을 넓혀나가야 한다. "남들의 성과를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고, 나의 생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헝클어진다." 대학에서의 철학공부란 어지럽게 널려있는 웹사이트들 속에 담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작정 허우적거리지 않고 스스로가 그려낸 항해도에 따라 스스로가 잡은 방향타로 삶의 항로를 헤쳐나가는 인간형으로 자기훈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시대의 철학교육은 학습의 각 매듭에서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언어=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 대학에서의 공부란, 특히 철학공부란 핵심적으로는 자기형성-자기표현의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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