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영 / 본지 전문위원,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대학의 발전이 치열해진 세계화 환경에서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관건임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한국과 한국의 대학들은 급급히 대처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따라서 열쇠를 가진 국가정책에 대한 기대는 높아가고 있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국가는 대학에 대한 획기적인 재정투자와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주어야 함에도 예산의 한계를 핑계 삼아 대학에만 그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아마도 그 중에 대표적인 정책도구가 이른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선별적 재정지원 전략인 것 같다. 곧 ‘대학특성화 지원사업’이다. 그러나 대학특성화 사업이 대학현장에서 수행되는 과정을 보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있을 지는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것은 사업의 목적과 방향이 모호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학문 단위간 갈등 초래 국가와 정부는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방만해진 4백여개 전문대 및 4년제 대학에 대한 보편적 지원은 불가능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현재 GDP 대비 0.44% 지원, 선진국의 1% 지원에 비해 부족) 그러한 지원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특성화’라는 모호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사실은 통제와 평가를 통한 선별적인 지원 전략을 택하고 있다. 특성화지원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겠으나 사업 집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개별 대학들간, 또한 대학 내 다양한 학문 단위간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을 낳고 있다. 우리 나라 대학들의 현재 상황은 특성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대학의 기본교육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학의 시설 여건은 초중등학교보다 오히려 낙후되어 있으며 경상비 수준에 있어서는 우리의 경쟁상대인 선진제국의 일인당 교육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특성화 사업으로 지원받은 자금들은 사업의 본래 목적을 위해 투자되기 보다는 기반여건을 갖추는 데 ‘전용’되고 있는 실정이며, 자연히 특성화 자금을 받고 받지 못하는 대학간, 그리고 학문단위간 기본여건의 불평등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특성화 사업은 학문의 균형 발전에도 장애를 낳고 있다. 국가가 설정하고 있는 이른바 국가전략분야인 6T에 집중되고 있지만 특정학과나 전공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이와 같은 편중투자는 학문과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6T 분야도 사실상은 튼튼한 기초학문과 교양학문을 바탕으로 해서 발전할 수 있으며, 대학에서의 종합적 학문 소양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성화 사업은 사상누각을 짓는 것처럼 단편적 기술 훈련에 편중되고, 절름발이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재원 분배 비효율성 개선해야 특성화 사업은 그 집행 과정에서도 많은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모든 국가재정 지원 사업이 그렇듯이 특성화사업도 1년을 단위로 하는 국가 예산회계의 구속을 받는다. 그로 인해 아무리 빨라야 실제 예산의 배분은 하반기에 중복적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학교현장에서는 급조된 사업을 급히 집행하는 과정에서 재원의 낭비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특성화사업 범위의 모호성으로 인해 인문학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문분과들이 별도의 학내 조정 작업 없이 무차별적으로 신청하고 있으며, 이 과정의 노력과 자원의 낭비 또한 막대하다. 특성화 사업을 포함한 국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뀌어져야 하고, 그 핵심에는 대학의 발전을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부와 타 부처간의 기능 분화가 필요하다. 즉,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일반 지원을 책임 맡고, 과학기술처,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가 전략분야 관련 지원사업을 맡는 방식으로 기능을 분화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일반 지원 사업은 대학에 대한 지원사업 외에 대대적인 학생장학금 지원사업을 확대하여 시장선택에 의한 대학의 경쟁력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특성화사업을 비롯한 평가에 기초한 재정 지원방식은 조속히 일반 재정자원으로 통합해야 할 것이며, 교육부 이외의 타 부처나 기금의 재원을 활용하여 특성화 사업 등 관련 사업 재원을 충당해야 할 것인 바, 이를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위원장인 국가인적자원정책위원회 수준의 조정권이 효과적으로 발동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연구비 적정 관리 필요 한편 개별 대학에서는 학내 학문단위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하고 본부의 조정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대학의 특성화 방향을 장기적인 비젼에 따라 설정한 후 중단 없이 지속해야 할 것이며, 교육기관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문간 균형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의 노력도 필요하다. 우선 대학은 선진적 대학 재정운영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인 바, 그 중의 핵심적인 사항은 정부 일반재원과 학생 등록금 재원 외, 연구비 등 사회로부터의 기여금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투입함과 아울러, 연구비 재원의 효율적 관리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날로 증대하고 있는 연구비 재원이 대학 재정운영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학내 불균등을 심화시키는 경향도 발생한다. 대학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비젼을 세우고 보다 과감한 내부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며, 특성화 사업비로 인해 학내 학문단위가 불균등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합리적인 자원배분 전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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