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족 ‘연상(年上)의 유부녀를 유혹하는 남자 족’을 ‘제비족’이라고 일컫는 속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제비족’이라고 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인 제비(燕)를 연상하게 된다. 즉 날씬하고 멋있게 차려입은 남자, 그러니까 중년의 유부녀들이 탐낼 만큼 몸치장과 태도가 세련되고 제비처럼 잘 빠진 남자에서 연유되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말에 날씬한 사람의 몸매를 일컬어 ‘물찬 제비’ 같다는 속담아 있으니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속 사연은 천만 뜻밖에도 우리의 옛 창(唱:노래)에서 나왔음에랴! 우리의 창에는 서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이 있고, 그 옆이나 뒤에 앉아서 “좋지, 좋다.”하고 매기면서 북이나 장고를 치는 북잽이(장고잽이) 즉 고수(鼓手)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창을 하는 여인이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르려 하여도 만약 고수 즉 장고잽이가 박자를 잘 못 맞추어 준다고 한다면 그 노래는 이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창을 하는 여인은 그 장고잽이의 비위를 최대한으로 맞추어 주어야 하고 또 그가 하자는 대로하여야만 된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여인을 마음대로 유혹하고 조종하는 장고잽이의 이 ‘잽이’가 변하여 ‘제비’로 되었음이 훨씬 설득력을 지닌다. 따라서 이 ‘잽이’는 조선조판 PD인 셈이 되는 것이다. ·사돈(査頓) 우리나라 풍속에서 혼인을 한 두 집안의 어버이끼리, 또는 두 집안의 같은 항렬(行列)이 되는 친족끼리, 그밖에 상대편의 아래 항렬이 되는 이에게 부르는 호칭법으로 사돈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하면 그 신랑 및 신부의 부모가 서로 사돈이 되고 부모와 같은 항렬의 친족과 아래 항렬이 되는 친족을 부를 때 사돈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전승되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시대의 윤관(尹瓘)은 여진(女眞) 정벌로 명성을 떨친 명장이었다. 그가 1107년에 북방 정벌의 원수(元帥)가 되어 동북방 국경지대에 있는 여진족을 토벌한 뒤 그 곳에 구성(九城)을 쌓고 경계에 임하고 있을 때, 자기의 아들과 부원수(副元帥)인 오연총(吳延寵)의 딸과 혼인을 맺어 두 집안은 정이 더욱 두터워져 서로간의 왕래가 잦았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이 생기면 이를 말에 싣고 달려가 두 사람 사이의 정을 서로 두터이 나누었다. 그런데 윤관의 집은 시내에 있었고, 오연총의 집은 시내에서 십여 리나 떨어진 시골에 있었는데 하루는 오연총의 집에서 빚은 술이 맛있게 익어 오연총은 그 술을 말에다 싣고 시내에 사는 윤관의 집으로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그가 윤관의 집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비바람이 심하게 쳐서 그는 잠시 그 비바람을 피하였다가 그것이 그치자 다시 말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 본 즉 그 사이 내린 비로 강물이 범람하여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강변에 서서 강 건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때 윤관도 좋은 술이 생겨 이를 말에 싣고 오연총의 집으로 가다가 강을 건널 수 없어 강 건너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는지라, 이윽고 서로가 상대편을 알아보고 무척 기쁜 표정들을 지으면서 이곳까지 온 뜻을 상대방에 알리기 위하여 오연총은 술병을 들고 흔들어 보인 즉, 윤관 쪽에서도 역시 술병을 들어 답하는지라, 서로가 마음 속으로 만족해하면서 오갈 수 없는 형편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하는 수 없이 둘은 강을 사이에 두고 양편 둑 위에서 서로 술을 권하기로 하고 오연총은 나무를 벤 밑둥치에 걸터앉아 술을 한 잔 부어 “내 술을 한 잔 드시오.”라는 뜻으로 술잔을 높이 들고 머리를 조아리는지라, 건너편의 윤관도 술을 술잔에 따라서 높이 들고 “내 술도 한 잔 드시오.”라는 뜻으로 역시 머리를 조아렸다. 이렇게 몇 순 배를 하면서 서로가 말이 없는 가운데 정다운 몸짓으로 정을 돈독히 나누었다고 한다. 그 뒤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퍼지자, 사람들은 혼인을 한 두 집안의 어버이끼리 서로가 머리를 꾸벅거린 관계라고 하여 ‘사실(고찰)할 사(査)“자와 ”머리 조아릴 돈(頓)“자를 써서 사돈(査頓)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즉 자녀들끼리 부부의 인연을 맺은 부모들이야말로 따지고 부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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