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코믹 영화는 역사를 코믹하게 왜곡시키는 대중 엔터테인먼트이다. 당신이 이에 속아 정신 없이 웃는다면, 영화는 재미있게 되지만, 당신이 지불하는 비용은 아마 7000원이 아닐 지도 모른다. 만약 영화가 그냥 코믹으로 일관되게 나간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잘 웃었다 하며 잊어버리게 될 테니까. 그러나, 당신이 영화의 어떤 장면에 대해 감동을 받아 이를 머리에서 지울 수 없다면, 당신은 그 영화를 만든 자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잣대로 조상들의 과거 삶에 인식의 폭력을 휘두르며, 그들 나름대로의 멋진 삶을 현재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일그러뜨리는, 무지라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잔혹한 범죄를……. 만약 영화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에서 계백 부인 김선아의 명대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비록 그 안에 어떤 역사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황산벌의 진실을 왜곡시켰고 고귀한 피를 뿌리며 죽어간 이들의 명예를 더럽혔다. 웃기면서도 뭔가 의미를 남기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그의 역사적 몰이해로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오류는 그만의 오류가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가 범하는 오류이다. 역사를 그 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서 우리 멋대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감독의 잘못이기 이전에 바로 현재주의자인 우리 모두의 오류인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전쟁터로 나갔던 계백 장군, 물론 그 계백 장군이 의자왕 또는 백제에 대한 충성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장군의 명예 때문에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자기 가족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또한 김유신이 젊은 화랑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물론 화랑들이 역사에 길이 남기 위해 죽을려고 작정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역사적 상상력은 감독만큼 빈곤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높고 헛된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인간으로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기 전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의 부질 없음을 깨달을 정도의 지혜는 있다. 다만 죽기 전에 그것을 깨닫지 못해 헛된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그러면 진실은 계백 장군과 화랑의 명예로운 죽음은, 인간 답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들의 죽음은 치욕적인 삶의 거부였다. 당시 전쟁에 패해 포로가 되면, 노예가 되었고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계백이 가족을 죽였던 것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가면서 남겨진 가족의 비참한 (미래의) 삶을 괴로워하면서 내린 고뇌체 찬 결단이었다. 이를 본 백제 병사들이 죽기를 다해 신라군과 싸웠던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만약 전쟁에서 지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발생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죽기를 다해 싸웠던 것이다. 벼랑에 몰린 배수진, 그래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계백의 결사대를 무너뜨린 데에 사실 신라의 위대함이 있다. 물론 그 위대함은 신라 왕족의 특별함에 있지 않고 유별나게 기구했던 그들의 역사에 있었다. 강대국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수 백년 동안 침략 당하면서 겪었던 비참함이 그들로 하여금 비장한 마음 가짐을 가지게 했던 것이다. 정신적 무장 외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는 것을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계명을 마음에 새겼던 것이다. 이렇게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된 신라 화랑에겐 많은 군대를 가지고도 백제의 방어선을 뚫지 못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치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평소 자신들의 소신대로 불명예보다는 죽음을 선택했고 이러한 그들의 태도가 신라군의 사기를 높인 것이다. 아무리 계백의 결사대가 죽음을 각오했다고는 하지만,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달려드는 신라의 대군을 맡기에는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신라가 백제를 정복하여 삼국 통일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결국 황산벌 전투는 불명예스러운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 의해 그 결과가 달라진, 명예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자들의 위대한 전투였다. 헛된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라 고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용기 있는 자들이 죽었던 곳이 바로 황산벌이었던 것이다. 정신력에 의해 전쟁의 희비가 엇갈린 위대한 전쟁은, 역사에서 그렇게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산벌 전투를 명예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것으로 그리는 것은, 고귀하게 자신의 생명을 버린 이들을 역사적으로 다시 죽이는 것이다. 물론 헛된 명예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사를 검토해 보면 그런 경우는 많다. 그깟 명예가 무엇이길래 소중한 생명을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황산벌 전투는, 명예를 위한 전투가 아니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고 그것도, 자신이 아닌 자기 가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매우 인간적인 전쟁이었다. 그런 위대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준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한다고 해도 잠깐 웃기 위해서 그들의 고귀한 행동을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좀 야비하다고 생각한다. 헛된 명예가 끼치는 해로움도 크지만, 참된 명예는 정말 아름답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헛된 명예를 경계하기 위해서 참된 명예를 욕되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지 자신이 명예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해서 남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결국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어리석음은 아닐까? 물론 황산벌 전투를 만든 사람이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황산벌 전투를 헛된 명예가 초래한 전쟁으로 그림으로서 명예의 부질없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의도했다면, 그는 대상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황산벌 전투는 희극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인간의 모순을 드러낸 전쟁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정말로 아름다운(?)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재미를 위해 함부로 왜곡시킬 수 없는, 어떤 역사적 진실을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박지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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