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 본지 전문위원,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객원교수

필자가 머물고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교정을 거닐다보면 여러 국가에서 온 여러 인종의 학생들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속해있는 ‘교육연구학과’에서도 여러 나라 출신 학자들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비영어권에서 온 초빙교수나 객원 학자들도 강의나 각종 학술 세미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대학이 캐나다에서는 명문대학이라 칭해지고 있는 이름 하여 ‘세계적인 대학’(World-Class university)이다. 국내에서도 이름있는 대학의 경영 책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대학을 몇 년 만에 혹은 몇 년도까지 세계에서 몇 번째 이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곤 한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과연 그 포부가 몇 년 만에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경우엔 한 대학을 운영?관리하는 수장의 안목과 비전이라 보기엔 딱할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먼 이야기로 느껴질 때도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적어도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굳이 전문적인 대학기획·발전론에 입각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 조건 혹은 요건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먼저 대학 교정이나 강의실에서 서로 마주치거나 함께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외국 학생과 교수가 많아야 한다. 학생의 경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미국의 중위권 주립대학 이상 급의 학교가 그렇듯이 적어도 대학 전체 학생의 5% 정도는 외국인이 차지하여야 하고 최소한 4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와야 세계적인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선 과연 어느 대학이 이 기준에 부합되는 세계적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인가? 국내 일류 사학명문이라고 하는 연?고대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인가? 다음으로 각 전문분야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적인 석학 혹은 전문가가 대학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우리 대학의 경우엔 어떠한가? 국내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에서 근자에 들어 매 학기마다 박사과정 모집에 정원 미달 사태가 유발되고 있다. 만일 세계적인 석학이나 전문가들이 모인 대학이라면 과연 이런 현상이 일어나겠는가라고 반문해 본다. 학문 후속세대나 고급두뇌를 자국 대학에서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외국 대학에 입양시키는 우를 언제까지 범할 것인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자국에서 그렇게 ‘잘 났다고 우쭐거리는 교수들’이 내 제자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학문적 입양’을 보내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진 않는지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미 세계어가 된 영어나 불어로 대학에서 학문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환경이 구비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대다수의 교수는 영어로 강의할 수 있어야 하며, 많은 우수한 학생들은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선진 학문을 원서로 공부할 수 있는 어학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학생들을 유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의 선진화는 물론 대학교육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외국 학생들이 우리의 학문과 기술 및 고유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학제, 교육과정, 교육연한 등의 국제화와 더불어 특히 국가 차원에서의 재정 보조정책 및 대학 당국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대학은 그럴듯한 청사진을 되풀이해서 그리거나 번지러한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SCI 등재 논문 편수가 세계 몇 위에 든다느니 아시아나 세계에서 몇 위에 속하는 대학이라느니 언론 매체를 통해 아무리 보도하여도 그건 목을 치켜세우고 해를 재촉하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진정으로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거나 비상하기를 바란다면 말장난이나 숫자 놀음에만 매이지 말고 실질적인 대학교육의 국제화를 위한 행보를 재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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