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시인·시사평론가 / 본지 논설위원

단풍의 계절은 얼마 안 있어 낙엽의 계절로 이어진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약 50년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정신 병동의 얌전한 젊은 입원 환자 하나가 어느 늦가을 날 아침, 나무 밑에서 오랫동안 땅바닥만 보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인 듯 열심히 낙엽을 줍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위를 쳐다보고는, “위에서 떨어지는군!” 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낙엽을 도루 모두 땅에 버리고 병동 안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자기가 이 환자의 행동에서 느꼈으리라고 짐작되는 섬뜩함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나 자신이 그 환자처럼 낙엽을 줍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이다. 나는 그 환자가 그날 위를 쳐다보게 된 것처럼 그 후에도 사물의 바깥에 있는 원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반복해서 가지게 되기를 빌었다. 그래서 바깥으로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생각의 문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빌곤 하였다. 그것이 그를 낫게 하기를 빌었다. 공산주의에 마지막이 온 것은 1980년대 후반, 벌써 15년이 넘었다.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들고 나오고 그보다 앞서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정착시켜 가고 있었다. 개혁과 개방이 그들의 표어가 되었다. 소련제국이 해체되고 동유럽 여러 나라들은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선택하였다. 공산주의의 종말 현상은 그보다 훨씬 앞서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시작하였다. 스탈린의 사망이 계기가 되었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고 소련식 공산주의의 권위 추락을 틈타 중국, 쿠바, 베트남에서 독자적 공산주의를 내걸게 되었다. 서유럽 공산당들은 이른 바 신좌파(New Left) 운동에 들어갔다. 이 시기 김일성이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모색하게 된 것도 공산주의의 쇠퇴와 분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단말마(斷末魔)의 몸부림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생겼던 2백만 명 이상이 사망한 북한 기아 사태는 김정일 체제가 이미 낙엽의 계절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메시지다. 김일성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 그를 평양에서 만났던 어느 남한 인사가 물어 보았다고 한다. 중국이 개혁 개방에 착수하여 저다지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왜 북한은 그 길을 시도해 보지 않느냐고. 그 대답으로 김일성은, “우리는 중국과 달라 ‘종심(縱深)’이 너무 얕아서…”라고 얼버무리더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종심은 깊이라고 해석된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 북한 체제 전체가 금방 부글부글 끓게 되어 자신의 지배 권력이 무너지게 될 것을 김일성은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염려는 그 아들의 마음에도 그대로 세습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은 대를 이어 이미 떨어진 낙엽일망정 공산주의와 폐쇄적 배타주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인 듯 껴안고 있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껴안고 있는 것은 실은 자기네의 독재 권력이다. 사회주의-전체주의 독재는 경제 실패와 인권탄압, 이 두 가지가 서로를 확대하는 악순환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경제가 실패하면 인민에 대한 통제를 더 조일 수밖에 없게 되고, 인민을 통제하다 보니 경제는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 말이다. 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핵과 미사일 관련 무기 수출, 위조 달러화 제조·유포, 마약 밀거래 등 국제 범죄에 빠져 드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 김정일 선군(先軍) 독재, 인권폭압, 국제 범죄, 이 여러 가지는 실은 한 몸이다. 남한 정부가 유엔의 북한 인권 문제 표결에 기권했다는 것은 김정일의 독재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김정일과 함께 줍고 있자는 만고(萬古)의 우둔이자 범죄다. 북한의 봄은 자유화, 민주화의 모습으로 올 수 밖에 없다. 자유는 인권의 기본적 조건이자 인권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경제적 번영이 있는 곳에는 그에 먼저 자유가 있어야 했고 자유가 폐색된 곳의 경제적 번영은 미구에 따라서 폐색되고 만다는 것은 현대사의 경험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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