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질이 아주 못 된 사람을 가리켜 ‘망나니’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옛날 죄인의 목을 베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서 유래된 것이다. 옛날에는 큰 역적이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포교(捕校)가 잡기는 하여도 포청(捕廳)에서 처리하였고, 그 외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은 포도대장(捕盜大將)이 즉결하도록 돼 있었다. 훔친 물건이 많은 절도범이나 강도는 포도대장에게 올리어 사형을 처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장소는 지금의 광화문 전화국(光化門電話局) 아래 종로 길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은 망나니 또는 회자수라 했다. 이 망나니는 절도 전과 2범과 3범으로서 사형에 처해야할 사람을 특별히 용서해 포청(捕廳) 옆 전옥(典獄)에 가두어 두고, 사형할 일만 생기면 이들을 불러내어 목을 치게 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에는 망나니에게 술과 고기, 밥 등을 마음껏 먹게 한 다음에 형을 집행시킨다. 옛날에는 국가에서 옥에 갇힌 죄수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사서 먹어야 하거나 집에서 가져다가 먹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죄수 가운데 집이 없거나, 친척이 없는 사람은 포교(捕校)나 포졸(捕卒), 또는 지금의 교도관(看守)인 옥사장(獄司長)이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기에 바빴다. 집도 없고 친척도 없이 오래 갇혀있던 망나니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곤란하다가 별안간 술, 고기, 밥 등을 실컷 먹게 되면 “흥, 사람 죽일 일이 생겼군! 나에게 한밥을 먹이게” 하며 좋아했다.(*여기서 “‘한밥 먹는다’란 뜻밖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까닭 없이 무엇이 생긴다”는 뜻이다. 망나니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는 데서 유래했다. 누에가 마지막으로 먹는 밥을 ‘한밥’이라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거기서 유래된 것인 듯 싶다.) 그 뒤 포교들 사이에서도 생각지도 않은 음식이 생기면 “우리도 망나니인가? 한밥을 먹게”라는 말이 유행했고, 민간인들 사이에도 차츰 퍼져나가 죄를 지어 까닭없이 먹을 것이 생기면 ‘한밥 먹는다’라는 속설도 생기게 되었다. 사형 집행장에는 포청의 종사관(從事官)이나 감참관(監斬官)이 베개를 높이 괴고 앉았고, 그 앞에는 포교와 포졸들이 삥 둘러 있으며 그들 뒤편에는 구경꾼들이 빽빽히 서서 구경을 했다. 옥사장이 망나니를 데리고 나오면 망나니는 그 칼을 휘두르면서 미친 사람 웃듯이 ‘히히히’하고 웃으며 손을 벌리고 군중 앞에서 돌아다닌다. 그러면 그 때 군중들이 엽전을 그의 손에 던져준다. 이 때 감찰관이나 옥사장이 속히 집행하라고 호령을 하나 망나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돈을 얻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날만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아량을 베풀어준다. 얼마 뒤에야 망나니가 사형수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어 목을 베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단칼에 베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을 쳐서 짓이겨, 죽일 사람을 몹시 괴롭힌다. 사형 집행 도구는 양쪽에 자루를 박은 작도(斫刀)인데 그 칼은 날이 안 서있고 길기만 해 망나니들이 후려치는 작도에 목이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사형수의 친척이 있으면 망나니에게 속히 죽여달라고 돈을 주며 애원한다. 이것을 ‘속참행하(速斬行下)’라고 했다. 망나니는 이 때 행하(行下) 돈이 많으면 속히 죽여주고, 적으면 수십 번을 짓이겨 죽였다. 형 집행이 끝나면 곧바로 포졸이 망나니를 잔뜩 결박한 다음 다시 옥에 가둔다. 이것은 망나니가 그 흥분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사람을 해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망나니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돈밖에 모르기 때문에 뒤에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 부르게 되었고 그 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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