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이임사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이 21일 오전 교내 김영의홀에서 열린 총장 이취임식에서 대학의 구조개혁과 관련해 "진통으로 상당한 몸살을 앓았지만, 이화여대의 방향을 정했다는 면에서 보람을 느꼈다"며 "후임 총장이 구체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해 이화의 발전에 공헌해 줄 것"을 당부했다. 신 총장은 이달 말 임기를 마친다. 신 총장은 이임사에서 "재임기간 유연하게, 그러나 원칙을 관철하려고 노력했다"며 "개인이라면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총장으로서는 물러날 수 없는 일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 총장은 "총학생회의 등록금 동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재임 동안 교수의 책임수업시수 감축과 캠퍼스 확장 사업 추진, 금혼 학칙 개정 등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이화여대는 올해 음악대학을 학부로 전환하는 등 유사학과를 통폐합하고 학부대학, 예술대학, 건강과학대학을 신설하는 등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이 결과 2005년 14개 였던 단과대학 수를 11개로 축소했고 정원도 10% 감축하는 등 몸집을 줄였다. 다음은 신인령 총장의 이임사 전문. 4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이화의 부름을 받아 두려운 마음으로 소명의식을 가다듬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총장보직 4년 간 고단한 매순간이었지만 한편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일속에 묻혀 살같이 지나간 세월이어서 감동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없이 부족한 제가 감히 이화라는 세계적 여성명문사학의 선장 구실을 잠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화공동체 고유의 문화와 전통의 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학교와 재단이 합심하고, ‘세계여성지성공동체’를 선도하는 대학의 자긍심을 가진 동료 교직원들의 헌신, 끝없는 이화사랑의 동창들과 이화를 아끼고 지원하는 이화친구들의 힘, 우수하고 지혜로운 우리 학생들의 정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화에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총장직을 인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취임하면서 저는 소박한 희망을 피력하였습니다. 선대부터 꾸준히 추구해 오던 이화의 비전 실현 작업을, 변화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보강하며 내실 있게 지속함으로써 우리시대 이화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화의 정체성에 입각하여 한층 진보된 역동성을 살려내는 변화를 꾀하면서, 이화공동체 구성원과 이웃에게 행복감을 나누는 진정성 있는 살림과 정책을 모색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당시의 전체교수님들의 요구와 희망이었던 ‘책임수업시수 감축’과 ‘승진․승급제도의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정년 보장의 경우 제외)등 학내 제도변경을 단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수업과 학생지도 및 연구업적의 질적 양적 향상을 꾀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통한 강의만족도는 놀랍게 좋아졌고 교수님들의 SCI 급 논문 수도 크게 증가 하였습니다. 한편, 학생들의 장학금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개선하는 등 학생복지 향상을 꾸준히 꾀했습니다. 다만, 총학생회의 등록금동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학칙상의 금혼조항을 폐지하고 그 조항에 의한 제적자의 한시적 재입학을 허용하여, 돌아온 고령의 이화인들에 의해 감동의 캠퍼스가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경력개발센터를 신설하여 이화인들의 평생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 리더십개발원을 설립하여 이화가 선도하는 여성학을 이론과 교육에 더하여 사회적 실천으로 확대하게 된 것, 통일학연구원을 통해 이 시대의 민족문제를 고민하는 이화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 모두 역점 사업들입니다. 또한, 기존의 ‘교내 특성화’사업을 대학발전의 우선적 전략과제로 적극 추진한 결과, 이미 몇 개의 분야에서는 국내․외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최고의 연구 성과물이 연일 보도되고 교수님들은 물론 대학원생과 심지어 학부생까지 Nature, 사이언스 등 세계적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대형 정책연구과제 수주량과 연구비가 큰 폭으로 증가하여 고무적입니다. 이는 우리학교의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발전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척도의 하나입니다. 또한 학계의 눈길을 끌 정도의 중량감 있는 석학들을 특별 영입하여 분야별로 포진하게 한 보람도 큽니다. 한편, 대학은 발전하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새로운 공간수요가 따릅니다. 우리 학교는 특성화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공간수요도 함께 폭증하여 새롭게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21세기 이화의 꿈의 프로젝트’로 일컫는 지하캠퍼스 (ECC)건설을 기획하여 내년 말이면 완공됩니다. 이밖에도 이미 완공되어 다음 달 봉헌식을 준비 중인 대학원기숙사와 국제기숙사, 이화알프스어린이관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은 공간신축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대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화가족들의 참을성 있는 불편감수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동창회를 비롯한 이화가족과 사회의 이화사랑에 힘입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축기금과 장학기금 등 기부금모금이 결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여 이제 모든 제도적 정비와 절차를 마치고 2007년부터 새로운 대학편제로 출발하는 대학구조개혁 사업이 힘겨웠지만 큰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국내외의 모든 대학들이 직면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배경의 핵심은, 산업시대를 지나 지식정보화시대로 인한 21세기 지식혁명이 요구하는 고등교육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사회의 인구감소와 초 고령화, 그리고 삶의 질 추구 등에 대응한 대학의 적극적 대비도 구조개혁의 구체적 배경의 하나입니다. 이번에 우리학교의 구조개혁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충분히 부응한 수준에는 못 미치고, 다만 현재 가능한 정도의 최소한의 변화를 감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변화에는 어느 정도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상당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이화가족들이 동참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화의 변화에 대하여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총동창회와 사회의 다양한 오피니언 리더들께 새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 방향과 그릇은 마련되었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발전방안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하여 내용 풍부하게 담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화창립 120주년의 감격을 되새깁니다. 우리는 이를 기념하는 잔치와 행사를 외식(外飾)으로 요란하게 하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우리 이화 자신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이화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고 보답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려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하나로서 창립당시에 건축된, 단순한 건물이상의 의미를 가진 ‘이화학당 한옥교사를 복원’하여 이화역사관으로 세우게 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화글로벌 파트너십프르그램(EGPP)’입니다. 이는 이화의 창립스승 스크랜톤 선생님을 기리고 창립정신을 깊이 아로새기는, 국제적 나눔의 실천을 과감하게 시작한 것입니다.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저는 우리나라 대학사회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여러 요인들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나친 안정성 추구와 현실안주적 또는 개인주의적 대학문화, 여전히 구시대의 팽창주의적 문화의 잔존, 전공(또는 학과)중심의 교수소속을 토대로 한 거버넌스 등이 극복되지 않으면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서 요구되는 유연성과 대통합․융합에 의한 교육과 연구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사회가 함께 깊이 고민해야할 일입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지난 4년간 저와 함께 학교발전을 책임 맡아 학자로서의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주신 대학본부 보직자와 교무위원, 그리고 각급 기관장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겸하여 노고를 치하 드립니다. 또한 저를 총장으로 신뢰하고 성원하며 오늘에 이른 교직원 선생님들과 총동창회 임원들을 비롯한 동문 선후배님들의 과분한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길이 간직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이화학당의 존경하는 윤후정 이사장님을 비롯한 전․현직 이사님들의 지도와 신뢰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이화호의 소중하고도 무거운 짐을 새 선장 이배용 신임총장께 넘기며 이배용 신임총장님의 건투를 빕니다. 이배용 신임총장은 이미 이사장님께서 소개하신바와 같이 훌륭한 이화인으로서 새롭게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화의 현재와 미래를 잘 가꾸어 가실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열정이 있는 리더라 할지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정신과 여성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화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이화가족과 이화의 친구들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이배용 총장과 학교를 성원하여 이화의 꿈 실현에 함께 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끝으로, 저 개인의 소회의 일단을 말씀드리며 이임인사를 마치려 합니다. 저는 일을 수행하면서 유연하게 그러나 원칙을 관철하려 노력했고, 부득이 타협을 하게 될 경우 그것은 원칙관철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외적 선택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난관 속에서도 초점을 잃지 않고 굳건히 견뎌 이겨내려 했습니다. 저 개인의 일이라면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총장으로서는 물러날 수 없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주 힘들 때면 저의 젊은 시절 일하며 즐겨 부르던 흑인영가 가사 중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힘은 강하다”를 다시 흥얼거리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예전과 같은 열정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제 내면에 ‘세상 모든 약한 것’에 대한 눈물과 감수성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스스로 안심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서 축복입니다! ‘이화의 앞날은 밝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임하게 된 것 또한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 7.21 이화여대 제12대 총장 신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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