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잔디밭에 수놓은 정겨운 웃음 소리

화려한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유혹하는 상점들. 드문드문 손수레 좌판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아주머니와 앳된 여학생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대학정문을 향해 걷다보면, 한 대의 통학차량이 미끄러지듯 ‘근화교’ 앞에 정차한다. 잠시 후 막 내린 연극의 주인공이 관객에게 인사하듯 젊은 처자들이 잇달아 한 사람씩 버스를 빠져나온다. 잠깐 동안 근화교는 엷은 화장을 한 이들 지성들과 주변의 노오란 유채꽃이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5월의 향기를 실감케 한다. 근화교. 덕성여대의 교화인 무궁화에서 이름을 딴 이 다리는 이 대학의 하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0여분 간격으로 등하교 차량이 드나들고, 점심때면 요기를 하러 나서는 교직원들과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장관은 오후 4시쯤으로, 하교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긴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문까지 이어진다. 덕성여대는 5천명이 약간 넘는 그리 크지 않은 대학이지만 국내 다른 대학에 비해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이다. 약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영예도 누렸지만, 잠시 민주화 과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광경을 보며 잠시, 가수 안치환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대학본관 건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교문을 경비 아저씨의 삼엄한 눈초리를 피해 캠퍼스 안에 들어가 보니, 눈앞에 드넓은 녹색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승용차 한대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곳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아마도 어여쁜 여학생들을 지켜주는 보디가드인 모양이다.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따가운 햇볕을 책이나 신문으로 가린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학생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캠퍼스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민주동산’이다. 총학생회장 이수미 양(영문과 4년)에 따르면, 이곳은 “학생들과 직원들의 각종 집회가 열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마침 십 여 마리의 까치가 내려 앉아 사람들 사이를 활보 한다. 이 곳 주인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제 집인양 거니는 새와 물끄러미 이들을 지켜보며 간간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수줍은 여학생들의 손을 보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열려 있는 이곳이 진짜 ‘민주동산’이란 생각을 한다. 한 여학생이 옆으로 누운 채 잠시 북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함께 시선을 돌리니 삼각산 이 캠퍼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정상인 ‘인수봉’도 한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인수봉은 마치 잘생긴 남성의 얼굴 옆모습을 한듯하다. 학생들은 이를 ‘큰바위 얼굴’이라 부른단다. 이수미 양은 “삼각산 정기를 받아 학생들 기가 센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힘들때 마다 큰바위 얼굴을 보며 위로 받기도 한다”고 웃는다. 민주동산 옆에도 도로 건너편으로 잔디밭이 또 있다. 이곳 명칭은 영근터다. 밤나무가 많은 이 대학에서 밤나무가 영글 듯 학생들의 심성과 학문적 능력이 영글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한가위가 다가올 즈음이면, 굳이 털지 않아도 떨어져 있는 밤을 주우며 학생들은 잠시 흩어진 마음을 다잡곤 한단다. 물론 이 밤은 주로 경비일과 청소를 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몫이다. 좁게 난 길을 따라 최근 지어진 대강의동과 인문사회관으로 발길을 옮기니 또 다시 작은 동산이 나온다. 그 곳에는 자작나무가 서있고, 피리 부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상이 수줍은 듯 앉아있다. 이 조각상은 총장을 역임한 주영숙 교수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홍보실 직원 조은희 씨 (심리학과 94년 졸)는 “서울대 치대 출신인 주교수가 서울대 치대에도 똑같은 조각상을 만들어 세워놓았더라”고 귀띔한다. 그에게 올록볼록한 동산의 형상이 참 재미있어 물으니, 스머프 동산이란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작고 아담하고 귀여운 형상이 스머프를 연상케 해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동산 규모가 작아졌지만, 예전에는 야외수업을 가장 많이 했던 곳이며, 벚꽃이 활짝 필 무렵에는 누가 보아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란다. 그는 “쌍문동 캠퍼스는 서울 북쪽에 위치한 관계로 겨울에 눈이 많은데 학생들은 이를 겨울눈이라 하고, 봄에 벚꽃 잎이 흩날리는 것을 ‘봄눈’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상상해 보라, 따스한 4월의 봄볕사이로 뿌려지는 벚꽃 눈을, 그리고 겨울철 송이송이 떨어지는 눈을···. 비엔나 숲과 대학으로는 드물게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예술대학의 유리갤러리를 둘러보고 나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쾌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캠퍼스는 활발하고 떠들썩했던 낮과는 달리 정숙한 분위기다. 더욱이 어둠이 잇달아 가로등 불빛을 만들어 내고, 2001년 세워진 설립자 차미리사 동상에 조명이 비춰지면서 캠퍼스는 고즈넉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내 곧 학생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조금씩 채우기 시작한다. 빽빽이 들어서 있는 단풍나무사이로 유아교육관으로 가는 아담한 길은 유모차를 밀며 소풍 나온 젊은 엄마, 아이를 목마 태운 채 걸어가는 듬직한 아빠의 어깨로 꽉찬듯하다. 저녁이 되면서 캠퍼스의 주인이 인근 주민들로 바뀌는 것이다. 재직기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일찍 캠퍼스와 삼각산을 오가며 건강을 다졌다는 권순경 명예교수(약대, 전총장)는 “덕성여대 캠퍼스는 문을 경계로 가름돼 있지 않고, 학생 유무로 가족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며 “덕성여대는 이 지역 전체가 캠퍼스이며, 지역주민들의 대학이다”고 말한다. 대학과 주민이 소통하는 대학. 국내 최고 명산 삼각산을 배경으로 국내 대학으로는 드문 평지캠퍼스에 드넓은 잔디밭, 그리고 밤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로 이뤄진 녹색 캠퍼스. 이곳에서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어갈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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