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산학협력단장/생물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포함하여 350개가 넘는 대학이 있다. 이는 시, 군, 구의 수 230 여개에 비해 보면 기초자치단체마다 평균 1.5개의 대학이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특징이자 문제점은 모든 대학들이 대학의 학과나 교육현장의 여건과는 관계없이 수도권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학벌을 추구하는 수험생들의 수능 시험점수에 의해 획일적으로 서열화가 철저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척박한 땅에 뿌려지면 제대로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이 놓여있는 토양은 점점 척박해지고 있으며, 지방 대학들이 놓인 토양의 황폐화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이제 조금 늦기는 했지만 대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지방 거점대학에 우수 학생들의 입학률이 그리 낮지 않았었다. 그러나 수도권과 거점대학의 수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현 상황 하에서 우수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소위 수도권 명문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OECD 국가들에서 우리나라처럼 수도권 한곳에 명문대학이 밀집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나라에 특유한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정부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 합쳐져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학원 입시에서 다시 BK21사업 등의 영향으로 수도권 집중 현상이 일어나 지역 균형발전이 무색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상황을 무시한 채 최근 서울대가 지방대학과의 공동 학위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대의 기본 취지는 좋지만 이는 지역 거점대학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공동화를 더욱 확산시킬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예전과 같이 좋은 직장을 구하고, 질 높은 삶을 보증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입시철이 되면 많은 입시생들 특히 학부모들이 수도권의 명문대학 진학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학력주의로 집중되어 있으며, 학력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을 판단하는 제일의 척도가 바로 학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식들을 소위 일류대학에 입학시키겠다는 일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학력주의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인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제 출신 대학만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사회 주역이 되는 것은 10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 10년 후에도 과연 대학의 간판이 지금까지처럼 중요할 것인가를 깊게 고려해 보아야 할 때라 생각된다. 교육의 내실화에 대한 대학의 책임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대학교육의 부실화로 인해 기업이 대졸사원보다는 경력직 사원을 선호하여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특성화와 전문화를 서둘러야 하지만 모든 대학이 연구중심대학으로 방향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는 각 지역별로 학부중심 대학들이 명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교육부도 명목상의 통합이나 법인화만을 주도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른 특성화 전략을 제시하고, 대학 스스로가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별로 특성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유럽 지역의 대학들을 모델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중학시절 부터 적성과 소질 등을 철저하게 파악하여 대학에 갈 사람과 기술 분야 학교로 진학할 사람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기술만 가지고도 사회에서 충분히 우대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지금과 같은 입시 과열 분위기 해소와 대학의 교육 내실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조성에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교육정책이 정부의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