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연구소 신청하려면 중점연구소 지원 포기해야

지난 18일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이 발표되면서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거점연구소로 선정되면 10년간 연 10~15억원을 지원하는데다 전임연구인력에게 국립대 전임강사 수준의 연구비를 지급하는 대규모·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과 집중’ 방침에 지방대학들이 ‘지역균형육성’을 요구하는 등 선정 후에도 적잖은 파장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 진흥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추가 예산확보도 관건으로 떠올랐다. ◆내년에 추가 예산 확보, 당장 현안으로 떠올라=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허상만, 이하 학진)은 지난 21~23일 인문학 관련 연구소장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진흥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교육부와 학진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내달 중순 세부사업계획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성태용 학진 인문학단장은 설명회에서 “올해 정도의 규모로만 한다고 해도 2~3년간 해마다 200억~3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며 “10년 동안 약 1조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장 관심이 큰 거점연구소(단)와 지역학연구소만 해도 전체 지원대상은 40곳이지만 올해는 각각 12개, 8개 정도만 선정한다. 40개를 모두 선정할 때까지는 기존 선정 연구소 지원액에 더해 신규 선정 연구소에 지원할 예산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문학 진흥사업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올해 발표한 300억원보다 세 배 정도 많은 약 1,000억원이 해마다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고등교육 재정확충 부문에 인문학 지원을 집어넣는 등 추가 예산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이냐 ‘지역 안배’냐= 인문학 진흥사업은 ‘선택과 집중’이 기본 원칙이다. 조성택 전 학진 인문학단장(고려대 교수)은 “인문학이 공멸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유일한 정책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평현 전남대 교수는 “지방에서는 서울의 큰 대학이 독식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균형발전을 위해서 지역대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영기 경북대 인문대학장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은 맞지만 기존에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연구소에 지원이 몰릴 경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연구소들이 모두 죽어버릴 수 있다”이라고 우려했다. 성태용 단장은 “중점연구소, 기초연구 등 학진의 기존 인문학 지원사업은 계속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선택과 집중’으로 갈 것”이라며 “연구 설계를 충실하게 하면 얼마든지 지역대학들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존 중점연구소, 갈아타기식 지원은 안 돼= 한 대학이 거점연구소를 여러 개 신청하거나 거점연구소와 지역학연구소를 함께 지원하는 것에 제한은 없다. 하지만 학진의 중점연구소에 선정돼 지원받고 있는 대학 부설 연구소가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을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 단장은 “완전한 원칙이 선 것은 아니지만 기존 중점연구소를 포기하고 신청하도록 해 ‘갈아타기’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생각”이라며 “중점연구소 지원기간이 7~8년 남았는데 선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은 지원을 포기하고 신청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단장은 “전임연구인력을 10명 이상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한 대학이 여러 개의 거점연구소에 신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1차 선정은 ‘아젠다’ 최종 선정은 인력 확보에 중점= 가장 덩치가 큰 인문한국 사업은 1·2차로 나눠 선정한다. 먼저 연구 아젠다와 개괄적인 연구계획을 중심으로 선정 연구소의 1.5~2배수를 선정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세부사업계획서와 단계적 연구인력 확보 방안 등을 추가로 제출받아 최종 지원 연구소를 선정할 계획이다. 성 단장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연구진까지 망라한 계획서를 내서 심사하면 연구역량이 뛰어난 데도 줄을 잘못 서서 참여하지 못하는 연구자가 생길 수 있다”며 “사업계획서 작성과 심사가 충분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10월 중순은 되어야 선정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기 학장은 “연구과제 중심으로 평가하다 보면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 분야에 소홀해질 수 있어 창의적 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조성택 교수는 “애초에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 연구자들이 개인연구에 투자할 시간도 없게 만드는 ‘연구자 착취 계획’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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