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예산 확충돼야 조교문제 해결"

서울의 A대학 행정조교 이지영(가명, 37·여)씨는 99년 일반회사를 다니다 직장을 대학으로 옮겼다. 출퇴근 시간이 분명하고 잔업이 거의 없다는 장점 때문이다. 보수가 작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이씨의 희망은 지난해 11월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구체화됐다. 비정규직법의 핵심골자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다.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7월부터는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계약직) 근로자와 새로 계약을 체결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씨의 희망은 지난 17일 비정규직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되면서 물거품 됐다. 이에 따르면 기간제로 2년 이상 근무해도 정규직화 되지 못하는 예외 직종에 대학조교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이씨는 "비정규직 법안은 사용자에게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였다"며 "법 시행을 앞두고 희망을 품었었는데 물거품 됐다"고 말했다. ◆대학조교 기간제법 적용 예외=이로써 대학들은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동여맸던 머리끈을 풀 수 있게 됐다. 지난달 19일 시간강사가 기간제 특례대상에 포함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학조교 마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노동부가 이같은 시행령을 확정, 발표한 이유는 '대학 조교를 대학원생들이 스쳐지나가는 일자리'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대학교 조교는 수행업무의 특성상 기간제법으로 사용기간을 규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의 조사결과에서는 전체 대학 조교 중 '직업형 조교'가 38%를 차지하고 있다. 직업형 조교는 말 그대로 직업으로서 조교 업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 2005년 10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 전국 223개 대학(국공립 38개, 사립대 185개)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조교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약 2만2,580명의 조교 중 '직업형 조교'는 38%였고, 학생조교가 62%를 자치했다. 조교제도를 운영하는 대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직업형 조교만 운영하는 대학은 147개, 직업형 조교와 학생조교를 같이 운영하는 대학은 31개, 학생조교만을 운용하는 대학은 34개다. 민주노총전국대학노조 한정이 정책국장은 "대학에서 조교는 이미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현실이 이런데도 수행업무의 특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업형 조교은 고용도 극히 불안정하다. 최순영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학에서 조교 임용은 6개월, 1년, 2년 계약으로 돼 있다. 특히 약 92%에 해당하는 인원이 근속기간 5년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고, 사립대의 경우 5년차 이하가 99%에 달했다. 사립대 조교 3,041명 중 5년차 이상은 불과 47명뿐이었다. 유영만 건국대 노조위원장은 "대학조교는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 10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으며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특히 행정조교는 직원과 동등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시행되면 2년 안 돼 잘린다”=그렇다면 노동부는 전체 조교의 38%에 달하는 '직업형 조교'가 있음에도 조교를 왜 '스쳐가는 일자리'로 해석했을까. 노동부 비정규직대책팀 담당자는 이에 대해 "교육관련 종사자들의 특성을 인정해 반영해 달라는 교육부측의 요구가 있었다"며 "조교를 대학의 비정년트랙 교원과 같이 봐달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담당자는 "비정규직 법 시행을 앞두고 일부 대학들이 관련 규정을 바꿔 행정조교를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라며 "비정규직 법이 시행되면 오히려 대학들이 그간 계약을 연장해오며 일하던 조교들을 그만두게 만들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를 계속 쓰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법이 노동시장에 역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학조교는 97년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교원의 범주에서도 제외돼 재임용 기회를 부여받을 권리도 없다. 대학에서도 할 말은 많다. 시간강사나 비정년트랙 교원, 조교 등을 정규직화하기에는 재정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 노조도 대학 조교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등교육 예산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정이 대학노조 정책국장은 “대학 조교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의 재정문제이며 이는 고등교육의 예산확보가 이뤄져야 풀릴 수 있다”며 “우리나라 고등교육 예산은 3조6,000억 원 규모로 도쿄대의 예산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학에 대한 기부 혜택을 강화해, 대학 재정 확충의 길을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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