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캠퍼스]연세대

사람이 넘치는 번화가 신촌을 20분 가량 찬찬히 거슬러 오르면 연세대 정문에 닿는다. 시야가 확 트이는 듯한 첫 느낌은 연세대의 중심도로인 ‘백양로’ 덕분. 어림잡아 300여 미터를 쭉 뻗은 후 언더우드(원두우) 동상을 축으로 ‘Y’자로 갈라지는 백양로는 그대로 연세대 역사의 증인이다. 이 대학 출신의 시인 기형도가 “은백양의 숲은 짙고 아름다웠”다고 노래했듯 ‘백양로’란 이름은 도로 좌우편에 백양나무를 심었던 데서 유래했다. 지금의 백양로에는 은행나무가 서 있지만, 은백양의 짙은 추억은 이 길을 영원히 백양로로 남게 한 것이다. 곧게 펼쳐진 백양로의 끝자락에 이르면 ‘ㄷ’자로 벌려선 언더우드관·스팀슨관·아펜젤러관이 맞아준다. 나란히 사적 275·276·277호로 지정된 세 쌍둥이 건물은 1920년대에 건립돼 연세대의 오늘날을 있게 한 유서깊은 건물들. 가운데 공간에 대학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을 품은 것이 상징적이다. ◆영화 속 그 곳, 석조 건물 연세대의 상징이 된 이 석조건물들은 벽면을 뒤덮은 담쟁이 넝쿨로도 유명하다. 아이비리그 대학과의 유사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으로, 가을에는 빨간 단풍으로 자연을 흠뻑 녹여낸 고풍스러운 장관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이 건물들이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 ‘클래식’의 남녀 주인공이 윗도리를 받쳐들고 빗속을 함께 뛰어가는 유명한 장면이 촬영된 곳도 여기다. 새학기를 맞은 봄, 선배가 “여기는 어느 영화·드라마에 나왔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새내기들은 “여기가 그곳이었구나” 하고 천진스레 감탄하는 모습들이 학교 곳곳에서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청년의 마음, 윤동주 시비 ‘삼거리’라 불리는 본관 앞마당 ‘Y’자 백양로 공간 주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학생들은 이를 ‘잔인한 4월’이라 부르는데, 중간고사 기간 만개한 진달래·백목련과 벚꽃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시험공부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눈길을 왼편으로 돌리면 작다랗고 아늑한 녹지공간에 윤동주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재학생·친지·동문들의 뜻과 정성을 모아 1960년대에 세워진 이 시비에는 청년의 깨끗한 마음을 상징하는 ‘서시’가 새겨졌다. 이 대학의 한 재학생은 “자장면을 시켜먹는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한데, 시비 앞에는 누가 갖다놓았는지 모를 꽃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데이트 코스, 청송대 맞은편으로 보이는 성암관은 작년 말부터 독립영화 상영관이 들어서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CJ의 후원으로 대학에는 처음으로 설립된 이 교내 영화관은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영화를 본 후 성암관 뒤편으로 펼쳐진 청송대(聽松臺)를 거닐어보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에서 극찬했던 그 곳이 바로 청송대. 문학과 철학의 토론 공간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자연녹지로, 연세대는 이 곳을 ‘연세의 뒤뜰’로 소개하고 있다. 향긋한 솔내음과 키 큰 나무 그늘이 어우러져 계절마다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청송대는 더할 나위 없는 연세대 구성원들의 쉼터이다. 흔히들 ‘청송’을 푸른 소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솔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는 뜻.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가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을 덮고 오솔길 솔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가 너무 고마워”서 ‘청송대(聽松臺)’로 이름했다는 일화가 기념비에 새겨져, 그 운치를 더한다. 특히 고즈넉한 저녁이면 풍물패의 연습 소리가 활기차게 들려오던 청송대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는 전언이다. ◆학생들의 생생한 무대, 노천극장 청송대를 돌아 언덕배기로 올라서면 노천극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천극장은 학교 행사를 비롯해 각종 콘서트가 열리는 대형 야외극장으로, 대동제나 연고제 같은 축제가 펼쳐질 때면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의 응원 소리가 흥겨운 메아리로 울려퍼지곤 한다. ◆선배들의 추억, 역사의 뜰 발길을 돌려 백양로를 내려오다 보면, 급하게 걸어가느라 무심코 지나친 명소들이 곳곳에서 손짓한다. 쭉 뻗은 백양로 어디에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나 할 만큼. 대표적인 곳이 학생회관 뒤쪽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연세 역사의 뜰’이다. 연세의료원의 모체인 광혜원 건물을 포함한 한옥식 건물은 창립 초기의 유품들을 전시해 한눈에 옛 역사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 앞쪽으로는 이한열 열사 추모비를 둘러싼 이른바 ‘한열 동산’이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최루탄에 맞아 산화, 100만 시민을 운집하게 했던 장본인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윤동주 시비와 더불어 이한열 추모비 앞에는 순결했던 젊은 영혼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는 꽃들이 정물화처럼 놓여 있었다. 이제는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갔던 선배들을 추억하고 기념하는 곳으로 남았다. ◆젊음이 물결치는 활천대 ‘한열 동산’에서 백양로를 가로지르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는 활천대가 있다. 축제기간, 장난기 어린 학생들이 동기나 선후배를 물에 빠뜨리곤 하는 곳이다. 활천대를 둘러싼 잔디밭에는 밤이면 학회와 동아리 뒤풀이를 하는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넘쳐, 이래저래 젊음이 물결치는 공간으로 쉴 틈이 없는 셈이다. ◆불 켜진 연구실… 대학의 진정한 아름다움 이 주위에 위치한 공과대학·이과대학 건물들 사이를 빠져나가면 대운동장이 나타난다. 어스름이 깔리고 학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 조깅과 산책을 즐기는 지역 주민들이 운동장을 채우기 시작한다. 운동장 외부 담장을 허물고 꽃밭을 만들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연세대의 노력이 눈에 밟히는 대목이다. 지역주민의 눈에 비친 연세대 캠퍼스는 어떤 모습일까. 한 주민은 “캠퍼스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 늦은 밤 곳곳에 불이 켜진 연구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현답(賢答)’한다. 5년 내 5개 분야를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킨다는 연세대의 중장기 비전 ‘5-5-10’ 프로젝트도 표현은 거창하지만, 실은 그 불빛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 터. 밤을 밝히며 학문의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야말로 대학이 간직한 진정한 아름다움 아닐런지, 캠퍼스의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정문을 뒤로 하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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