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 자리는 외로운 것..청와대에 끌려다녀선 안된다"

[속초=이경탑 기자]"청와대에 왜 휘둘리는가. 교육은 이념에 의해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교육만을 생각하고 외부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이 필요하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최근 교육부와 대학의 갈등 양상과 관련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참여정부 초기 2003년 12월에서 2005년 1월까지 제4대 교육부총리 소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연세대 교수로 복귀해 학자로서의 정년을 마친 후, 지난 2월 강원도 속초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는 안병영 전 부총리를 29일 만났다. 그는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5년 12월부터 1997년 8월까지 교육부 장관을 맡은 바 있어 우리나라의 짧은 교육사에서 두 차례나 교육계 최고수장에 올랐었다.

2008학년도 입시안 발표 당시 수능을 9등급제로 바꾸면서 1등급 비율과 관련해 당시 청와대와 깊은 갈등을 겪은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소신파 관료로 유명하다. 첨예한 이념 갈등과 학벌주의에 발목잡힌 우리 교육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그가 견지한 교육 철학은 교육과 관련한 근본주의, 경제주의, 평등주의를 조화시켜 교육 갈등을 해소하자는 것.

안 전 부총리가 속초에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기자가 전화로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인터뷰는 하지 않겠노라 사양했다. "자연이 좋아 산과 바다가 있는 이곳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겨왔고, 철학은 빠진 채 이념만 판치는 현 사회와 정치적 논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만남을 거절했다. 그러나 안부라도 확인하고 싶다는 간청에 "그러면 얼굴만 보자"며 약속 장소로 흔쾌히 나왔다.

짧은 안부에 이어 교육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교육은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는 인식 틀 아래 우수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수월성 교육'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안교육 등을 통해 인격체가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이 최근 청와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지난 26일 청와대에서의 총장과 대통령의 토론회 이후 대학과 정부의 갈등의 골이 오히려 더 깊어졌다는 지적과,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무소신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최근 대학가 반응을 전했다.

안 전 부총리는 "누구나 교육에 대해서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와 대학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번 힘들었다. 교육부총리 자리는 참으로 외로운 자리"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김신일) 부총리가 소신껏 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가 참으로 깨끗한 사람이고, 현재 교육상 난제를 소신껏 잘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했다"는 말도 보탰다.

김 부총리는 교육전문가로서 청와대의 어떤 잘못된 요구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으로 해석했다. 김 부총리가 소신과 소명만을 생각하며 일했다면 지난 봄 3불에 이은 최근 입시논란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히 교육부총리가 3불 홍보를 위한 전국 로드쇼에 나서는, 사상 유례없는 해프닝도 없었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안 전 부총리는 교육발전협의체가 2005년 이후 사실상 식물화 상태에 놓여 있고, 입시사정관제를 도입하지 못한 점을 2008년 입시안과 관련한 최근 논란의 주된 이유로 지목했다.

교육부총리 재임시기인 2004년 10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그는 “시험성적과 석차만이 강조되는 데서 벗어나 교육경쟁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소개하고, 교육발전협의체 내에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입시개선안에 따른 보완작업을 펼칠 것이라는 계획을 공개했다.

교육발전협의체는 새 입시안과 관련한 혼란을 줄이고, 고교 교육정상화와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대학과 고교, 학부모, 시민단체, 언론단체 대표 등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을 미리 찾아 고민, 검토하자는 일종의 사회대통합기구. 내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앞서 만들어진 경제계의 노사정위원회를 벤치마킹했다.

안 전 부총리 퇴임 이후, 교육발전협의체는 2008 입시안을 두고 구체적 논의조차 협의하지 못한 채 그동안 시간만 보냈다.

안 전 부총리는 2008 입시안에서 수능을 9등급제로 변경하면서 1등급 비율과 관련해 당시 청와대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청와대측이 1등급 비율을 7%로 고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4%안을 관철시켰다. 7%는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것으로 그렇게 될 경우,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4%안을 끝내 고수했다. 대통령 앞에서도 "교육문제에 관한 한 내가 전문가"라며 학자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고교평준화 논란과 관련, 대학측에도 일부 잘못이 있다고 꼬집었다.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무성의하다는 지적이다.

안 전 부총리는 "고교평준화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대학들이 고교평준화라는 틀 속에서 조금만 더 고민한다면 좋은 학생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노력한다면 개별 대학에 맞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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