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브리핑] “내신30% 가이드라인은 숫자놀음… 김 부총리에 실망 ”

사진:중앙일보“철회해야 갈등 풀려”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장호완 교수 “기대컸던 교수 출신 金교육부총리에 실망감 커 교수들 인내 한계… 교육시국선언 얘기도 나와 국제경쟁에 필요한 생존력, 평준화론 어림 없어”


‘내신 대란’과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가 ‘내신반영률 30%’라는 타협안을 제시한 지난 6일, 김신일(金信一) 교육부총리의 발표를 지켜본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단이 즉각 교육부 타협안을 조목조목 되받아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장호완(張浩完)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을 당일 오후 그의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장 교수는 “내가 정부 비판에 앞장서고 거친 용어도 많이 쓰는데 (내가) 싸움꾼도 아니고 오죽했으면 그러겠느냐”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교육이 정치적인 의도와 인기영합 세력들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며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나 (교육) 위기선언을 발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교수사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내신을 둘러싼 갈등이 대학 자율성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대학들이 입시에서 내신을 50% 반영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교육부총리가 말했는데, 세계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는가. 평소 대학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교육학 교수 출신 인사가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을 때 우리는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 실망감과 배신감이 크다.”

―교수단체들이 왜 성명서까지 발표했나.

“입시전형은 대학 교육의 권한이고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한술 더 떠 대학들을 소외된 자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이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대학자율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다. 그것이 정치권력·관료권력에 의해 무시당하는 상황을 심각하다고 봤다.”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내신갈등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사과했는데.

“글쎄, 그것이 전정한 사과일까. 사실 부총리 발표에 제도적인 변화나 시정되는 내용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 것이 없다면 진정으로 국민들에 사과한 것이 아니다.”

―‘교육 평등주의’와 ‘경쟁 및 차이 인정’이라는 입장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

“더불어 살면서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인성교육도 분명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주(主)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이 우리끼리만 사는 세상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 시대’가 도래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글로벌화된 국제경쟁에 필요한 생존력을 키워주기를 원하는데 정부는 평등화·평준화를 고집한다. 해외출장 가서 15~16살짜리 아이들이 필리핀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을 봤다. 우리보다 교육 여건이 더 좋지 않은 필리핀까지 아이를 보내는 것을 보니 참담했다.”


―교육부나 진보진영에서는 수능성적 위주 선발이 공교육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자꾸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지금 더 무너질 공교육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공교육으로는 안 된다. 경쟁하지 말고 우리끼리 편안하게 살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밖(외국)으로 한 번 나가봐라. 가혹한 국제적인 잣대에 그런 공교육으로 버텨낼 수 있는가 말이다. 미국·영국·프랑스에서 지난 2~3년간 ‘교육 혁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데 우리는 경쟁력을 갉아먹는 인기 영합적인 평준화 정책만을 붙잡고 놓지를 않고 있다. 장차 우리 아이들이 외국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청와대나 교육부는 대학들이 2004년에 내신 위주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에 합의해 놓고 약속을 위반했다고 한다.

“당시 교육부가 시안(試案)을 들고 나오기는 했지만 시간을 갖고 심도 있게 토의된 기회나 자리가 없었다. 또 토의를 했다 하더라도 걸핏하면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면서 규제를 들먹이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 시안을 가지고 틀렸다고 나설 대학이 당시 있었겠는가. 내가 알아보니 대학들이 (도입을)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하더라. 백 번 양보하더라도 교육부는 그동안 문제점을 예상하고 수정·보완한 방안을 제시해 이번 사태를 막았어야 했다.”

―내신이 중요해지면 아무래도 학원 공부하느라 학교에서 조는 아이가 줄지 않겠나.

“그렇지 않다. 내신 경쟁이 학생들을 거미줄처럼 옭아맬 것이다. 이미 내신 과외가 번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사춘기에 학업을 등한시하고 한두 번 한눈을 팔았다는 이유로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래서 대학별 교사(본고사)·수능 등 다양한 출구가 필요한 것이다.”

―중·고교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우는 과목 수가 너무 많다. 미국 학생들은 한 학기에 평균 8과목을 공부하는데, 우리는 13과목을 배운다. 여유가 있는 미국 학생들이 심화학습을 하는 동안, 진도 나가기 바쁜 우리 학생은 수박 겉핥기식 공부를 한다. 기본 교과목을 정하고 나머지 과목들은 통합 운영해 숨통을 터줘야 한다.”

―교과목을 줄이면 해당 과목의 교사 반발이 거셀 텐데.

“지금처럼 과목이기주의가 강한 상황에서, 그걸 추진하는 과정은 혁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렵더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과정이 지나치게 전문화된 사범대학도 통합교육을 시킬 수 있는 교원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달라져야 하고 대입체제도 변경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들 목 죄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걸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말에서야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다는 시각도 있다.

“4년 동안 참다가 한계에 도달했다. 교수들은 감정이 상했다고 해서 당장 욱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웬만하면 참고 가슴에 재워 놓는다. 그런 불만들이 차근차근 차 올라오면서 이번에 폭발한 것이다. 대통령이 쓴 몇몇 표현이 교직에 있는 것에 모멸감을 느끼게 했고, 침묵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교수들 머리에 심어줬다. 교수들은 교육혁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위기선언을 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한다.”

―앞으로 내신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

“지난 5일 김 부총리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 만나서 각 대학의 사정을 인정해 준다고 하기에 그런 방향으로 대학의 자율이 확보된다고 생각했었다. 교육부가 제시한 ‘30% 가이드라인’을 보니 부총리의 움직임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해결 방법은 가이드라인을 철회하는 것이다. 정말 공교육을 생각하고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시하고 몇 %냐는 식의 숫자놀음을 그만둬야 이번 사태가 해결될 것이다.”


장호완(張浩完·지구환경과학부·64) 교수는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0년대에는 자연대학장도 2번 역임했다.

2002년 총장선거에서는 정운찬(鄭雲燦) 전 총장과 경쟁했지만, 이후 서울대가 정부·여당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정 총장의 입장을 지지하는 교수협 성명서를 발표해 힘을 실어줬다. 2005년 7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전면전’, ‘초동진압’ 등의 용어를 사용해 서울대 입시안을 비난했을 때 이를 정면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3월 ‘3불(不) 논쟁’, 내신갈등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전면에 나서기에는 피곤하다”며 “이달 말 교수협의회 회장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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