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내신 논란이 재연될 전망이다. 교육당국이 뒤늦게 불을 다시 지폈다. 교육부는 4일 200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내신 반영비율 30% 미만인 대학에 대해서는 입학전형이 모두 끝난 내년초 행·재정적 지원과 연계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을 두고 교육부가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는 “정책 기조를 바꿔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길 간곡히 호소하는 것”이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다시 ‘제재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행·재정적 제재 카드 왜 빼들었나= 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은 이날 “정부가 권고한 내신 비율을 지키지 못한 대학들에 매우 유감”이라며 “내신 비율을 지킨 대학과 지키지 못한 대학은 행·재정적 지원과 연계해 차별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 국장은 “행·재정적 지원 연계 여부는 입시가 끝난 내년 초 내신 반영비율뿐 아니라 등급 간 점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해 결정할 것”이라며 “기본 취지에 많이 벗어난 결정과 행동을 한 대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대학과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대학 측이 발표한 내신 반영비율을 정부가 그대로 수용할 경우 ‘가급적 내신 30% 반영’이라는 정부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공교육 정상화에 적극 동참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분히 ‘기 싸움’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2008대입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보면 앞으로도 학생부 반영비율을 둘러싼 갈등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특히 대국민 파급 효과가 큰 7개 사립대와의 초반 기 싸움에서 밀려선 안 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인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7개 사립대와의 싸움을 선포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입학처장 역시 “7개 대학 입학처장들이 20%대를 고수한 것은 교육부와의 신경전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교육부가 꺼내들 수 있는 ‘재정적 지원 연계 카드’가 많아진 것도 한가지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 우선 내년에 고등교육 관련 사업비가 1조원 증액된다. 1조원이면 산술적으로 단순 계산해도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에 50억원씩 나눠줄 수 있는 큰돈이다.


뿐만 아니라 법학전문대학원 법 시행도 이달 28일로 다가왔다. 교육부는 법 시행에 맞춰 법학교육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로스쿨 설치인가 심사기준 확정 및 신청 공고 등의 일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7개 사립대를 비롯해 전국 40여개 대학이 사활을 걸고 로스쿨 유치를 위해 뛰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적 지원 연계’ 방침은 대학본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로스쿨 설치인가 등은 법학교육위원회 권한이지만, 촉박한 개교 일정을 감안할 때 일종의 사무국 역할을 맡게 될 교육부 의견이 인가기준 등에 거의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법학계의 대체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우 국장은 “누리사업과 BK21 등 교육부 예산지원 사업 등 대부분이 포함되지만 내년 예산안이 확정되어야 알 수 있다”라며 “오늘은 기본 방향만 밝힌 것이고 적용 대상 사업은 내년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말 바꿨나?= 교육부의 제재 방침이 지난 7월 김 부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에서 나왔던 정책 기조를 스스로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당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가급적 내신 비율을 30% 이상으로 맞추도록 권고한다”고 밝히면서 “지금 시점에서 제재 여부를 얘기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남수 차관은 보충 설명을 통해 “정책 결정 기조에 변화가 있다”라며 “종전에는 제재 조치를 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잡았는데 정책 기조를 바꿔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길 간곡히 호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 부총리는 ‘제재한다’ ‘안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정책 기조를 바꿔”라는 서 차관의 부연설명 탓에 대학 관계자들은 행·재정적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게 사실이다.


내신 반영비율 역시 “가급적 최소 30%에서 출발하고 향후 3~4년 이내에 단계적으로 목표치(50%)에 도달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학생부의 등급 통합 등 ‘내신 무력화’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스스로 삼가 줄 것으로 믿는다”라고만 언급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입장이 바뀐 게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우 국장은 “당시에도 제재 여부에 대해 ‘제재 여부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답변했지 ‘예스’, ‘노’로 분명히 대답하지 않았다”며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적극 기여하는 대학에 대해 행·재정적으로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라고 강조했다.


우 국장은 “그 동안에는 대학들이 정시모집안을 마련하는 중이어서 개별대학에 대해 특별히 ‘제재 한다, 안 한다’ 말할 단계가 아니었고, 오늘은 대학들이 모두 발표를 했기 때문에 기본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유성 고려대 입학처장은 “7월 교육부총리의 담화문과는 말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학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며 “교육부는 입장 선회가 아닌, 명백하고 일관된 기준을 세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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