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책임연구원

어쩌면 내년쯤이면 우리는 전공도 직장도 걷어치우고 로스쿨 입학을 위해 신림동이 아닌 대치동 근처를 맴돌며 전전긍긍하는 ‘로스(쿨)낭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다시 3년쯤 지나면 로스쿨 다니면서도 변호사 시험에 떨어질까 봐 밤잠 못자는 ‘변시낭인’(辯試浪人) 문제로 고민할 지도 모른다. 재수생, 사교육, 청년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고비용 고등 실업 문제로 골치를 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 로스쿨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 것으로 이식하기가 만만치않다는 우려다. 로스쿨이 그런대로 유지되는 나라는 미국. 하지만 그쪽 사정은 우리와 다르다. 로스쿨 기반의 법조인양성 제도는 한마디로 다양한 전공을 학부에서 수료한 자가, 변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이면서도 다양한 법률 지식과 기법을 공부하고, 소정의 교육과정 이수를 통해 그리 어렵지 않은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해 곧바로 실무에 투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출 경우 검사나 판사 또는 전문 분야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자율’과 ‘경쟁’ ‘조기 실무 투입’이라는 관점에서 운영되는 제도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국가 전체의 경제력이 커지고 대외 개방이 가속화될수록 법률서비스 수요는 증가한다. 옛말에 “송사는 잡놈이나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국내의 인구 1,000명당 민사사건수(2004년 기준)는 24.8건으로 미국의 57.5건에 비해서는 낮지만 독일 23.4건, 일본 4건에 비해서는 높게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한 명의 변호사가 담당하는 민사사건수는 189건으로 미국 15.6건, 독일 16.5건, 일본 24.3건으로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나타나 수요자 입장에서 국내 법률 서비스의 후진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사 양성을 대학당 최대 150명 입학정원으로 못박고 총입학정원도 최대 3,200명 수준으로(변협은 1,200명을 주장) 통제한다면 당분간 변호사에 대한 매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 그동안 미국 등지에 학부 유학 나갔던 자원이 국내 로스쿨로 유턴하고, 국내의 괜찮은 직장인들도 방향을 돌리려 한다. 상위권 대학에서 법학이외 전공학생들은 졸업후 학교를 바꿔 로스쿨 진학을 더욱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현 상황대로라면 우리 로스쿨은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교육기관의 명성을 구가할 것이고, 지원자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들어온 로스쿨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난관이 기다린다. 그동안 법과대학에서 방대한 대륙법체계에 대한 이해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판례들을 학부 4년간, 160학점 정도로 이수해왔는데 앞으로는 3년간 90학점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래서 벌써부터 일부 대학에서는 ‘프리로스쿨(Pre-law school)’이니 ‘법대예비학부’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 로스쿨에서 가르쳐야할 내용에 비해 3년은 너무 짧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이다. 90학점으로는 과거 기준으로 하면 기초적인 내용도 이수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부는 로스쿨제도 도입의 취지에 반한다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설상가상 일본처럼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70% 이하로 통제할 경우, 변시 합격을 위해 정상적인 학교교육 외에 추가적인 사교육 문제가 불가피하게 등장할 것이다. 일반대학원에 비해 훨씬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도 탈락자가 나오는 구조라면 이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은 기대할 수 없다. ‘변시’ 합격에 올인하는 현재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분위기가 연출될 것은 뻔한 이치다. 설사 응시횟수를 제한한다 해도, 수료 후 응시를 제때 하지 않고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미루다 보면 낭인이 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의 본산지 미국에서는 왜 이런 문제들이 없을까. 미국의 경우 로스쿨 설립인가, 변호사자격시험 운영, 인증평가 등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 대신 미국변호사협회(ABA) 등 민간기구가 관장한다. 자유로운 경쟁 상황에서 로스쿨 제도 전반을 운영하지만, 본격적 경쟁은 실무에 들어가 다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한 사람의 법조인이 탄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실무에서 다양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면서 이뤄지므로, 로스쿨에서는 기본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그것만으로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로스쿨 수료는 법조인 양성교육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변호사 합격률 통제 등이 과도하지 않다.

제도의 이해에서 한 가지 시정되어야 할 통념은 법조삼륜이라는 말이다. 소송 추행이나 사법제도를 직접 운영하는 판사나 검사와 달리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리하는 보조자일 뿐이다. 변호사의 소송 대리나 법률 자문 행위는 그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한 자에게만 의미가 있다. 서비스의 수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고 전형적인 시장원리에 따라 개별 전문 분야에서 강자만 고객의 선택을 받는다. 따라서 기본적 소양 측정을 거친 변호사의 자격 부여에 대해서만 거시적으로 통제하고 그 이상의 전문성 판단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다. 변호사시험은 임용시험이 아니라 자격시험으로, 시험 합격자를 국가가 채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숫자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새로운 업무영역 개척을 차단하고 고객의 선택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국가적 통제 속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리 사회 특유의 교육 현실을 감안하여 거시적 규제가 불가피한 점도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규제적 요소를 최소화할 때 문제는 그만큼 줄어든다. 최소한의 그러나 꼭 필요하고 실현가능한 원칙을 정해 엄정하게 지키면 된다. 학생에게는 상대평가를 근간으로 한 학업성취도 평가, 대학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로스쿨 평가가 유효한 방안이다.

최근 법무부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원용, 변호사 자격시험을 이원화시켜 로스쿨 아닌 기존 법대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예비시험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시험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로스쿨 도입 취지는 완전히 퇴색한다. 비싼 등록금 내고 로스쿨에 진학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많은 문제점이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유에서건 이미 도입된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지금은 법학교육 관련 당사자들의 중지를 모을 때다.

로스쿨 정원이 줄고, 변시합격률을 낮출수록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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