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천절 휴일이던 지난 3일 대전 유성구 KAIST 응용공학동 건물 연구실 전체에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이 건물은 생명화학공학과와 신소재공학과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불붙는 대학 개혁 경쟁] <1>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 개혁 1년 수업 모두 영어로… 1학년생 “원서가 더 쉬워” 1년새 연구소 7개 신설… 여러 전공 통합 연구

지난 10일 발표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수시 1차 서류 합격자 명단에는 고아가 한 명 있다. 호남지역의 특수목적고에 다니는 A(18)군이다. 부모가 없고 친척이 보호자로 돼 있는 A군은 고교 성적은 다른 합격자보다 30%가 떨어졌다. 그런 A군이 관문을 뚫은 데는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해 사정이 좋지 않은 데도 이 정도 실력이라면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심사교수들의 판단이 뒷받침됐다.

A군의 예처럼, KAIST는 올해부터 지금까지와 달리 성적으로 줄을 세워 학생을 뽑지 않는다. 성적 외에 리더십이나 봉사 정신은 있는지, 창의성이 있는지를 보고 자질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서류전형을 통과한 1540명은 앞으로 교수 100여명으로부터 하루 종일 면접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변화는 서남표 총장이 취임한지 1년여 동안 진행되고 있다. KAIST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남표 신드롬’의 단면이다.

◆ ‘바꿔, 바꿔, 다 바꿔’

올해 KAIST에 입학한 강명재(18)군은 이번 학기 일반 물리학 II, 바이오공학의 이해, 세계화와 국제정세 등 9개 과목을 모두 영어로 듣고 있다. 그는 “이제 가끔은 번역 오류가 많은 한국 교과서보다 영어 교과서가 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강군은 ‘서남표 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 KAIST 학부 1학년 학생들의 전형이다. 이들은 모든 강의를 영어로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학점 관리를 철저히 한다. 2학년 학생들은 모두 장학금을 받았지만, 1학년 학생들은 학점이 2.0에서 3.0이면 일부 수업료를 내야 하고 2.0 이하이면 1년에 1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야 한다.

또 1년 새 만들어진 연구소만 7개나 된다. 바이오 융합 연구소, IT 융합 연구소, 복합시스템 설계 연구소, 나노융합연구소, 엔터테인먼트 공학 연구소, 청정에너지 연구소, 미래 도시 연구소 등이다. 모두 여러 전공 사이의 통합 연구를 제도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원광연 소장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 공학연구소는 지난 6월 경기 고양시에 있는 극장인 고양아람누리에서 ‘신타지아’라는 일종의 실험극을 올렸다. 무대에 비춰진 영상을 통해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고, 관객이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공연에 개입하는 등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기존 연극이 합쳐져 장르를 딱히 정할 수 없는 공연물이다. 이 내용은 지난 8월 뉴스위크 아시아판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졌다.

또 기계공학전공인 양민양 교수는 요즘 청정에너지 연구소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지금까지 연구와는 전혀 다른 풍력, 태양 에너지 연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 세계 상위권 수준까지 너무 멀어

이런 1년의 노력만으로는 KAIST가 세계적인 대학을 따라잡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KAIST가 목표로 삼고 있는 대학 중 하나인 미국 MIT와 비교해 보면 당장 차이가 드러난다.

서 총장 취임 이후 40명이나 교수를 뽑았지만 KAIST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7.4명에 그친다. MIT는 10.3명이다. 교수 1인당 대학원생수는 MIT가 6.2명, KAIST가 10.2명으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앞으로 이를 맞추려면 KAIST는 현재 430여명 수준의 교수 수를 700명까지 높여야 한다.

자금의 차이는 더 크다. 학생 1인당 예산은 MIT가 1년에 1억9700만원인 반면 KAIST는 4200만원이다. 교수 1인당 연구비는 MIT가 14억원, KAIST가 2억8000만원이다. 차이를 좁히려면 수천억 단위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KAIST 관계자는 “서 총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모금된 돈은 수백억원 수준이며 KAIST는 더 필요한 돈은 빚이라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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