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수 4명에게 듣는 여교수의 삶과 역할

대한민국에서 여교수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대생 비율이 절반에 가깝지만 여교수 비율은 10.7%에 불과한 현실. 남성 교수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에서 그들은 소수다. 교수로서,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살아가는 여교수 4명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젊은 여교수는 여학생의 ‘롤 모델’”-정소연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정소연 동양대 교양학부 강의전담교수는 올해 서른 두 살이다. 2004년 4월부터 3년 동안 시간강사를 맡다가 이번 학기부터 교수로 첫발을 내딛었다. 교수라는 직책이 가볍고 쉬운 자리가 아니어서 부담감이 적잖다.

하지만 시간강사에서 정식 교수가 되니 안정적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어서 좋다고. 젊기 때문에, 게다가 여교수라서 아이들과 스스럼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나이 차가 열 살 안팎이다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더 친밀하게 느껴지나 봐요. 연배가 있으신 교수님들에게 하기 어려운 말들을 많이 들어요. 젊은 여교수로서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 자신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자금 지원으로 공부해온 터라 박사과정까지 마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고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몇몇 여학생에게 이른 바 ‘롤 모델’로서 역할을 자처한다.

“학기 초 아이들에게 자기소개서를 내도록 해 계속 공부 계속하길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제 경험을 이야기해 줍니다.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제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더 챙겨주고 있어요. 학생들이 계속 공부하고 싶도록 의욕을 고취하는게 교수로서 베풀 수 있는 실질적인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어갈 교수 생활. 가사와 양육이 혹시 그에게 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많이 도와줘야 해요. 여교수-남편-학교가 서로 협력·보완해주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는 대학사회에서 여교수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소수라서 눈에 띄고, 스스로도 여성임을 지나치게 자각하고 주변에서도 ‘여자’라고 보는 시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교수와 남성 교수를 명확히 가르는 일보다 우선 동등한 인격체로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여교수의 분발이 더욱 필요한 때라는 것.

“여자 후배들을 위해 여교수가 문을 열어줘야 해요. 대학사회에 불만을 제기하며 이것저것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많이 움직이고 적극 나서서 인식을 바꾸는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여교수들, 대학 내 지위 키워야”-박남희 경북대 예술대학장


“여교수는 팔과 얼굴이 여러 개 달린 인도불상 같아요.”

박남희 경북대 미술학과 교수는 여교수로 살아가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학교 일 외에도 임신·출산·육아·가사로 바쁘고, 학교에서도 여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있느냐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이런 행동 뒤에 ‘여교수는 가정 일을 빙자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인식, 그리고 여교수의 임신·출산을 용납지 않는 동료 남성 교수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특히 여교수 임용 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남성 교수들의 ‘카르텔’을 하루 빨리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지원자가 차점자였는데 최고득점자가 타 대학으로 가버리면 임용을 꺼리는 남성 교수들이 공채 자체를 무효화하기도 합니다. 막을 방법이 없어요. 다수결이란 명분으로 남성 교수들이 여성지원자의 질적 평가 부분에서 최하위를 주는 경우도 많아요.”

박 교수는 2000년 대구경북여교수회 정책세미나 ‘대구경북권 대학에서 여교수 임용 현황과 역할’ 발표에서 경북대가 전국국립대학 중 여교수임용비율 최하위라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당시 전국여교수연합회 고정명 당시 회장이 보시고 그해 가을 전국여교수연합회에서 주제 발표 요청을 했어요. 이후 여교수 임용을 할당제로 해 교육부에 올렸고, 여교수연합회에서 2002년, 2003년 세미나를 통해 줄곧 여교수 특별 정원 배정을 요청했죠. 그래서 2003년 6월 5일 결국 국공립대학 여교수 임용 목표제가 입법됐죠.”

하지만 박 교수는 여교수의 권익과 지위향상이 단순히 전체 여교수 비율을 높이는 데에서 그쳐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의사와 정책을 결정하는 보직교수에 여교수 임용을 늘려야 합니다. 많은 여교수들이 가정·육아 때문에 사양하고 있는데 이기적인 것이죠. 이런 세계에 갇혀 있어선 안됩니다. 폭넓은 사고와 포용력으로 리더로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대학 내 여교수들의 의사 결정권이 강해집니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고계원 아주대 자연과학부 교수

“직접 가르쳐보면 남학생과 여학생의 실력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남학생들이 나서서 주도하면 여학생은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질 못하고 주눅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남학생들도 어려워하고 있어’라고 지적해 주고 ‘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합니다.”

고계원 아주대 자연과학부 교수는 여교수들의 수가 적은 것에 여교수들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대학사회가 남성 교수 중심으로 돌아가고, 남성 교수들끼리 어울리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우선 여교수 비율부터 늘려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여교수가 적극적으로 여학생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 교수는 이에 대해 “여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고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았던 한국여성수리과학회의 창립이 좋은 예다.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만들었어요. 여교수들도 그동안 마음속으론 여교수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죠.”

2004년 창립하면서 외국 수학자들을 초대, 성황리에 창립을 마쳤다. 이후 여성수리과학회는 남성 위주 수학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1명에 불과하던 한국수학회 여교수 이사회 비율은 4~5명으로 늘었고 수학계 내에서 발언권도 더불어 세졌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여교수들의 힘이 여성수리과학회 창립으로 드러난 겁니다.”

고 교수는 여학생·여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라고 말한다. 스텐포드대를 졸업하고 아인슈타인 등 당대 최고 과학자들이 거쳐간 프린스톤의 고등연구소에서 2년 동안 공부했는데, 그 때 경험이 수학자로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외국은 여성에게 이런 기회들이 많이 돌아가 부럽기만 하다. 그는 이에 대해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좋은 기회를 얻느냐, 못 얻느냐’의 차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사회는 아직도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어요. 가능한 한 우리 사회가 좀 더 많은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이여, 해외로 눈을 돌려라”-신혜경 서강대 일본어학과 교수

신혜경 서강대 일본학과 교수는 올 7월 전국여교수연합회 신임회장에 당선된 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내년 2월 아시아·태평양 6개국 주한 여성 외교관 초빙 워크숍과 내년 6월 예정된 6개국 여성 국제학회 준비 때문이다.

내년 10월에는 일본 죠사이대 총장 초대로 한일 심포지움 초빙을 받았다. 10주년인 내년을 기점으로 전국여교수연합회를 전국 규모 학회로 발돋움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일부 지방대에서는 전국여교수연합회가 있는 줄도 모르는 여교수가 꽤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분과위원을 전국에 있는 여교수에게 골고루 안배했습니다. 최근 4년간 정관을 모두 손질하고 연합회도 사단법인으로 바꾸어 투자도 대폭 받을 예정입니다.”

전국여교수연합회는 지난 98년 ‘여교수의 지위 향상과 권익보호를 위해’ 여교수들이 세운 단체다. 남성 교수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여교수들의 숫자를 늘리고자 ‘국공립대 여교수 채용목표제’를 밀어 붙여 2003년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신 교수는 일본에서 15년을 지내고, 한국으로 건너와 서강대에서 15년째 교편을 잡고 있다. 교직이 천직이라 몸이 아파도 강단에만 서면 눈이 번쩍 뜨인다고 한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일 외에도 상담이 교수의 큰 역할이라 생각한다.

여교수여서 아무래도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의 상담이 잦다. 그때마다 신 교수는 “국제기관에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성들의 국제기관 진출 비율이 특히 적다는 것.

국내에서 활동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여성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게 여성 지위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여학생들은 네트워크를 잘 못해요.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갈 때 여학생들은 ‘모르는 사람 많이 온다’ 이러면 얼어붙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거리낌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네트워크가 약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해야 합니다.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더 강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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