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빈곤을 탓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지 않게 들린다. 철학의 자리를 따로 배려했던 일이 없는 사회일수록, 화근을 따지면 으레 '철학이 없다'니 하면서 공소한 끝맺음을 하곤 한다,

'없는' 철학 가운데 정작 아쉬운 것은 다름 아닌 통일과 그 이후를 대비한 철학적 비전이다. 근대화 이후 우리 땅에서 이루어진 철학이 워낙 수입한관념의 배열과 조작으로 운용된 데다가 냉전의 그늘 아래 반공 이데올로기가 끝없이 득세한 터에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민족의 장래를 긴밀하게 응대하는 자생적 철학을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의 글들은 이런 고민을 새롭게 대면하고 재구성해 가는 면밀하고 발빠른 행보를 보여준다.

송 교수는 과거의 군사독재정권과 마찰하면서 조국을 멀리하게 되었지만 분단체제의 현실을 나름의 자리에서 대면하면서 진보적 지식인의 실천력을 간결하게 보여준 바있다. 그리고 서구 주류담론을 버텨 읽으면서 학문적 관심의 촉수를 늘 '우리 나라'에 두고 통일과 그 이후를 대비한 철학적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에서 독보적인 열정을 보여왔다. 스스로 밝힌것처럼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세계에 대해서 항상 '제3세계', '동양' , '한국' 등 특수자의 입장을 같이 생각하려고 노력"해온 것이다,

남북한의 현실에 대한 그의 태도가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와 이어진 파행적 +권력구조와 극우반공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놓고서야 그 성격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21세기와의 대화』는 21세기가 열어줄 여러 지평과 쟁점에 균형 잡힌 시선을 주지만, 특히 향후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균형 잡힌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기실 한국의 철학자로서 보편성과 특수성, 세계화와 분단체제, 그리고 철학적 사변과 사회적 구체 사이의 긴장과 교호를 그처럼 간절하고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는 학자는 별로 없다 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세계화의 도전에 응전하고 통일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21세기의 시회 철학적 비전을 누구보다도 견실하게 구체화시키고 있다. 내남없이 수입담론의 와류에 허우적거리며 우리의 삶이 입주하지 못할 관념의 탑을 쌓는 데 분주한 우리 땅의 지적 풍토에서 그의 성취는 자극이 되리라고 본다.

김영민 (한일장신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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