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外柔內剛)’. 1일 취임한 김한중 연세대 신임총장의 첫 이미지다. 차분하고 조용한 학자풍의 분위기와 달리 직접 말을 나누면 강단있게 소신을 피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박또박, 막힘없이 질문에 대답해나가는 김 총장은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하게 눙치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연세대가 대외평가에서 저평가된 것을 두고 ‘착시’ 현상이라 항변하는가 하면, 동문간 협력이 부족한 점은 “모래알 같다”는 표현을 써가며 인정했다. 쓰든 달든 ‘팩트’를 중시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그의 스타일인 듯 했다. 김 총장은 홍보마케팅의 대폭강화와 학교-동문간 끈끈한 네트워크 구축 등 대책 마련에 나설 것임을 역설했다.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 2단계 BK21 총괄사업단장, 비전연구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김 총장은 전형적인 ‘행정통’으로 정체된 연세대의 발전을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학내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추진력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새 총장은 취임 전부터 이미 인사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세워 혁신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어려운 때 총장이 되셨습니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할 생각인지요.
“이미 시작이 됐는데요, 취임과 함께 저와 같이 일할 실·처장 인사부터 손을 댔습니다. 이번 인사 특징이 재무처·정보통신처·여학생처 3개 부서를 없앤 겁니다. 조직 슬림화가 필요했습니다. 또 직원 선생님이 처장을 맡는 총무처·관재처, 이 두 부서도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교체를 했습니다. 직원 분들은 ‘한번 처장이 되면 나갈 때까지 영원히 처장’이란 인식이 박혔는데 그 개념을 깨뜨려버린 겁니다. 보직은 보직일 뿐, 계급이 아닙니다. 끝나면 자기 자리 가야죠. 그동안 총장들이 부담감 때문에 정년 될 때까지 놔뒀거든요. 이게 부패의 고리가 되고, 정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조치를 했습니다. 어느 학교나 어두운 그늘이 분명 있죠. 그걸 걷어내려면 긴장감을 줘야 하는데, 부패나 부조리를 예방하는 출발점이 인사 아니겠습니까.”

- 제시한 발전계획 중에 1조원 기금 모금이 눈에 띄는데, 어떻게 모으죠.
“공약으로 내건 모금액 1조 200억원 중 8000억원은 송도캠퍼스와 관련된 겁니다. 처음엔 우리가 자체개발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려고 했는데, 재경부 승인과정에서 인천시가 주관하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기부 체납 형식으로 받아야 송도캠퍼스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짜 목숨 걸고 할 겁니다. 송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2000억원 가량이 목표인데, 모금은 총장이나 대외협력처장 일로만 생각하는 분위기를 확 바꾸려고 합니다. 첫째, 모금에도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금액의 10%는 비용으로 쓸 계획입니다. 또 연구 잘하는 교수에게 인센티브 주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모금한 사람들에게도 인센티브 원칙을 확실히 적용할 겁니다. 모든 학교 구성원이 모금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기부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원칙을 세우는 것이죠. 무조건 동문이니까 내십시오, 도와주십시오 하는 것보다도 건물이나 시설 명칭에 기부자 이름을 넣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브란스병원도 한국에 발 한번 안 디딘 기부자 이름을 딴 겁니다.”

- 밖에서 바라본 연세대는 최근 몇 년간 침체된 것처럼 보입니다.
“착시 현상입니다. 예컨대 대외 기부금 1위로 나오는데, 사립대 중에 그런 것이고 서울대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사립대 회계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그렇다고 연세대가 고려대보다 순수 기부금을 더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왜 그렇게 나오느냐? 사립대 회계기준에는 외부 연구비 수주액이 모두 기부금에 포함돼서 그렇습니다. ‘착시’ 현상이라고 보는 이유는, 연세대가 교수 연구업적이나 외부 연구비 같은 속내에서는 실하다는 겁니다. 고려대보다 앞서고 이공계로 특화된 카이스트, 포스텍에 비해서도 전체적인 면에서는 낫습니다.”

- 저평가됐다는 얘기인데,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요.
“포장을 못 한 건데요, 포장 잘 하는 것도 재주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홍보마케팅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 ‘더 타임즈’ 대학평가에서 2006년에 고려대가 150위였고 연세대는 484위였습니다. 1년 뒤에 연세대 236위, 고려대 243위로 나왔는데 사람들은 ‘고대=150위’라는 최초 보도만 기억한다는 거죠. 이거 사실 학교 잘못입니다. 또 사회 지배력이 약해서 그런 점도 있어요. 한쪽(고려대)은 서울시장이 연이어 나오고 대통령에도 당선되는데, 정치계·재계 어디 (연세대가) 앞서는 데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모래알 같이 합쳐지지 않는 기질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려대는 동문회라 하지 않고 교우회라 그러지 않습니까, 처음 만나서도 학번 확인하고 반말이 오가는 진짜 끈끈한 대학이잖아요. 학교 입장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행정대외부총장을 해봐서 아는데 동문을 모금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계획이 부족했습니다. 학교가 동문들의 사회적 진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이번 총선에 연세대 출신이 나간다고 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전국을 누비며 도울 겁니다.”

총장선거에서 ‘품위있는 개혁, 함께 풀어가겠습니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온 김 총장은 “CEO 총장이란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개혁은 교육의 수월성과 학교 위상을 높이는 데 필수지만 기업의 그것처럼 급진적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문제는 엉킨 실타래 같은데 급하다고 쾌도난마로 잘라버리면 매듭이 남는다. 그렇게 되면 실로서의 제기능을 못하지 않느냐”면서 “선거 과정에서 ‘품위’는 교수를, ‘개혁’은 직원을 가리킨다는 말이 돌기도 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함께’라는 키워드로 총장이 때로는 앞에서 끌고 때로는 뒤에서 밀면서, 자율성과 다양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 화제를 바꿔볼까요. 차기정부의 대입자율화가 이슈인데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학에 자율을 준다는 것, 환영합니다. 그러나 두고 볼 일입니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행정부의 속성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물론 방향에 대해선 전적으로 공감하죠. 자율에 반대할 총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렇고 미국이 저렇고 얘기를 많이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얼마나 다른지는 얘기 안합니다. 미국은 하버드대를 붙고 그보다 하위 대학을 떨어져도 전혀 이의제기하지 않는 나랍니다. 우리는 수능이 됐든 내신이 됐든 성적을 계량화해서 일렬로 세운 다음 정원에 맞춰 자르는 방식으로 선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히잖아요. 자율을 준다고 해도 기다려본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이런 겁니다. 국민적 정서가 다르니까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3불을 푼다 해서 대학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설령 자율화가 보장된다 해도 구체적 방법은 입학관리처 전문가들이 안을 마련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험생·학부모가 예측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할 겁니다.”

- 새 정권 하에서 신입생 선발은 어떻게 바뀝니까.
“입시는 수험생이나 학부모에게 파급력이 굉장히 큰 정책입니다. 정권이나 총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급하게 변하면 안 되는 겁니다. ‘예측가능’한 게 중요합니다. 변화를 주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할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입시가 좀 단순화됐으면 싶어요. 너무 복잡합니다. 이해찬 교육부장관 때 정책 기조가 ‘하나만 똑부러지게 하면 대학에 갈 수 있게 한다’는 거였는데, 그게 오히려 모든 걸 잘해야 하도록 만들었거든요. 지금은 1학기 수시가 폐지됐지만, 1·2학기 수시, 정시 다 준비하게 되면서 사교육을 크게 불린 거죠. 학교 입장에서도 입시 종류가 너무 많고 1년 내내 퍼져 있으니까 교수들이 여기 동원되느라 교육·연구시간이 부족해집니다. 제가 연세대 의대 68학번인데 본고사 4과목만 보고 들어왔습니다. 고교 2학년 때까지 놀다가 1년만 열심히 해서 연세대 의대를 들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이런 면에서 단순화시키는 게 좋다는 거죠.”

- 3불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기여입학제는 김우식 전 총장이 제기했는데요.
“임기중에 기여입학제는 도입하지 않을 겁니다. (국민정서상) 안 되는 것 뻔히 알면서도 나서서 도입을 주장하니까, 연세대가 돈 받고 기여입학시키는 줄 알지 않습니까. 3불 중 나머지는 풀어야 합니다. 다만 ‘고교등급제’란 용어의 뉘앙스가 영 안 좋아요. 우리는 고교 특성 반영을 원하는 건데 왜곡돼 받아들여지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대학들이 고교 내신을 못믿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문제가 자꾸 나오는 건데요,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고사도 입시를 단순화시키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솔직히 변형된 본고사를 다 보는 거예요. 수리면접, 수리논술이 변형 본고사 아닙니까. 본고사 못 보게 하니까 이렇게 나가는 건데, 서로 속이는 겁니다.”

- 신임총장으로서 추진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요.
“대학의 발전과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고 유지하느냐 하는 겁니다. 우수 학생도 뽑아야 하고 효율적 행정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핵심은 결국 우수 교수 확보입니다. 예전에는 연세대 교수라는 평판만 보고도 왔지만, 이제는 더 좋은 여건이 주어지면 미련없이 떠나는 시대입니다. 세계화 시대니까 국경도 없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우리 대학에도 굉장히 좋은 교수들이 여러분 계신데 이분들이 자꾸 다른 대학들의 오퍼를 받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특훈교수의 일종인 ‘언더우드 교수’인데요, 우수한 실적을 낸 교수들에게 연간 3000만원의 연구비를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4명인 언더우드 교수를 4년 뒤에는 40명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기금 모금도 특훈교수와 석좌교수 유치 목적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외국에서 석학을 모셔오려면 섬머스쿨 강의만 해도 다른 정교수 1년치보다 더 드니까요. 그래야 202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법학·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은 같은 제도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로스쿨은 연세대로서는 굉장히 잘된 정책이에요. 법대 구조로 갔으면 기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순 구도를 쉽게 못깰 겁니다. 사법고시가 아예 없어지고, 로스쿨에서 우수 교수들이 좋은 커리큘럼으로 가르쳐 고착된 위계를 뒤집는 굉장히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반면 의전원은 2+6으로 가든 4+4 학제로 가든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법대는 졸업자 중 소수만 사시를 패스하지만, 의대는 졸업자의 95%가 의사가 됩니다. 하늘과 땅 차이예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런 현실은 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미국식 제도만 도입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종일관 솔직함으로 인터뷰에 응한 김 총장은 특히 이기수 신임총장이 같은 날 취임한 ‘영원한 맞수’ 고려대와의 경쟁심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연대 상대-고대 법대라는 구도가 깨지고 있는 게 문제다. 법대는 우리가 많이 따라잡았지만 그만큼 고려대 경영대도 성장했다”면서 “모든 대학 구성원이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자세로 노력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김 총장은 또 “앞서 부정적 모습만 꼬집었는데, 사실 기업 인사 담당자는 연세대 출신을 가장 선호한다”면서 “연세인은 스마트함이 장점이고 우리만의 학풍과 분위기에서 우러나오는 저력이 있다. 멘토십 확대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 함양과 함께 선후배간 돈독한 관계를 정립, 기존 실력에 인성까지 겸비한 연세인을 길러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한중 연세대 신임총장 약력>

- 1948년 11월 2일 서울 출생
- 1974년 연세대 의학 학사
- 1977년 연세대 보건학 석사
- 1984년 서울대 보건학 박사
- 198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보건학 박사과정 수료

- 1998~2002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 1999~2002년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 2000~2002년 한국보건행정학회장
- 2004~2006년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 2단계 BK21 총괄사업단장, 비전연구위원장
- 2006년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현)

- 2001년 국민훈장 동백장
- 2002년 의사평론가상
- 2003년 동아의료저작상

<대담=이인원 회장, 사진=한명섭 기자, 정리=김봉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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