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전공)

최근 국내대학의 국제화 바람이 거세다. 많은 대학이 외국학생과 외국인 교수를 경쟁적으로 유치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가 의무화 되고 주요대학은 앞 다투어 국제하계강좌를 신설하고 있다. 한편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영어 강의가 실효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무리하게 실시되는 영어 강의가 교수나 학생모두에게 부담만 가중시키고 오히려 강의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전시 행정적 국제화 노력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의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가의 장래를 이끌 미래의 인재와 사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날로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각종 전문지식과 더불어 국제적 감각을 심어주는 것이 대학교육의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이는 선진국 대학들에서 눈에 띄게 강조되는 국제화 노력으로 나타난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예일 대 교수를 지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대학이 앞으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세 가지 교육 과제로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교육의 강화와 함께 학생들에게 다양한 외국 경험을 통해 국제 감각을 심어줄 것과 각자 한개 이상의 외국어를 습득토록 할 것을 꼽았다. 그는 현재 미국대학이 전 세계 인재들이 몰려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미국 학생들이 바깥세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이들 개인의 미래는 물론 미국의 미래도 밝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예일 대학은 최근 모든 학부학생이 졸업 전에 최소한 한번은 학기 중이나 방학을 이용 외국에서 수학하거나 인턴경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다른 주요대학에서도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국제화는 대학교육의 원조를 자부하는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초 필자는 소속하고 있는 대학의 국제교류를 위해 프랑스의 파리고등사범 (ENS), 벨기에의 루우벤 대학, 독일의 괴팅겐, 하이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각자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유서 깊은 대학으로 지금까지 수백 년간 내려온 전통과 교육방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이 대학들 모두가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변화의 공통적 핵심은 미국식의 새로운 석사과정 신설 및 영어 강의 개설, 외국대학과의 교류확대 등으로 상징되는 국제화였으며, 이들 역시 갑작스런 변화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내부적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었다. 한편 이들 모두의 적극적인 교류의사 표시에 함께 가신 유럽전공 교수님이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며 놀라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유럽의 대학들 역시 국제화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90년대 중반,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의해 필자가 속한 국제대학원이 설립된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다. 어찌 보면 이제 학부전반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한국 대학의 국제화 노력은 서구에 비해 오히려 빠른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한국과 아시아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학생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보며 새삼 높아진 우리의 위상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자만하거나 만족하는 것은 금물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줄곧 선진국의 뒤만 따라가다 모처럼 우리가 선점한 이 기회를 어떻게 더욱 잘 살려나가느냐이다. 우리 대학의 국제화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않고 있으며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반발과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의 국제화는 우리 모두 거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조류이며 대학의 사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짝이는 홍보용이나 졸속행정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제화를 진지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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