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자인 차상위계층 구분 시스템 없어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올해 입시부터 도입한 '기회균형 선발제도'가 선발 지침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수험생과 대학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교육기술과학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11월 '기회균형 선발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였다. 올 입시에서 서울대 등 80개교에서 '기회균형 선발제'로 2714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장 오는 7월과 9월 수시모집을 앞둔 대학들은 어떤 학생들을 선발해야 하는지 지침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가계수입이 최저생계비보다는 많지만 최저생계비의 120%를 넘지 않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황 파악도 제대로 안돼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3 학생인 A군은 '기회균형 선발 특별전형'을 통해 수시입학에 도전할 계획이다. 가족이 3명인 A군의 집은 부모가 월 200만원 정도 수입이 있어 원칙적으로는 차상위계층에 들어갈 수 없다.

2008년 기준으로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103만원으로 차상위계층이 되려면 소득이 124만원보다 적어야 한다. 하지만 A군의 집은 일용직으로 일하는 어머니의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차상위계층에 포함됐다.

반면 서울 노원구에 사는 고3 수험생 B군의 집은 A군의 집보다 소득이 적지만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아버지 혼자 월 130만원 정도를 버는 B군 가정은 가계수입이 124만원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차상위계층에 대한 정부의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 직원은 "차상위계층에 대해 일일이 실태조사를 벌일 수 없어 전산조회와 자필로 작성한 소득신고서를 믿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들‘혼란’, 학생들‘답답’

이 때문에 대학들은 이번 입시에서 차상위계층 학생들을 어떻게 가려 뽑을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지방 고교 교장으로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차상위계층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정형편이 더 나은 학생이 차상위계층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재산세 납부 실적이나 기타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등 자체적으로 검증 기준을 마련하겠지만, 일일이 실태조사를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불만이다. 고3 자녀를 둔 서울 강북구 김모(여·46)씨는 "동사무소와 복지부, 교과부에 차상위계층 대입전형에 대해 문의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해준 곳이 없었다"며 "입시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이명균 정책개발연구실장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준다는 좋은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정부의 준비부족으로 오히려 수험생들과 대학들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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