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산업과 학계의 긴밀한 협조의 필요성은 이미 지난 90년대부터 강조되고 있다. 공동 협력을 넘어서 협업(Collaboration) 체제의 구축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효용성 및 효과성 측면에서 기대하던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산학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는 것 또한 현재의 명백한 사실이다.

필자는 지난 2005년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웨인스테이트대학(Wayne State University)의 산업생산공학과(Dept. of Industrial and Manufacturing Engineering)에 근무하면서 인상적인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단순한 협력 수준을 넘어 기업 현장과 대학이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는 면에서 우리의 기업과 대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웨인스테이트대학의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경험한 곳은 대학 인근의 미시간 대학교 디어본(Dearborn) 캠퍼스에 위치한 포드(Ford) 자동차 회사 소유의 한 건물. 동료 교수의 제안도 있었고, 디트로이트에 왔으면 포드 자동차 회사 정도는 구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그를 따라 나섰다. 건물 2층에 올라가자, 소회의실 서너 개가 복도 양 옆에 있었다. 마치 학회가 열리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서는 작업복과 양복을 입은 청장년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 예닐곱 명이 뭔가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Engineering Management Master’s Program (EMMP)’. 그것은 회의가 아닌 웨인스테이트대학교 산업생산공학과의 석사과정 수업 중 하나였다. 1995년부터 포드 자동차 회사와 계약을 맺어, 우리나라로 치면 대리 및 과장급의 소그룹 리더격이 되는 직원들을 대학으로 보내 공학석사 학위를 밟도록 하는 일종의 기업 인력 교육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기업 및 공기업을 중심으로 팀장급 인력을 대학에 위탁교육 파견하여 석사 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EMMP 과정은 우리나라의 그러한 위탁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실리적이고 효과적인 체제를 갖고 있었다.

회의가 진행 중인 소회의실 중 하나에 발이 멈춰졌고 그 안을 보니 포드 자동차 로고가 새겨진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 몇 명과 웨인스테이트대학교 산업생산공학과 소속의 교수들, 그리고 교수와 함께 온 석박사 대학원생들 몇 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토론의 내용은 포드 자동차 회사의 전동장치(Powertrain) 생산 라인 중 하나를 재설계하여 재구축하되 다른 생산 라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생산 라인의 효용성을 테스트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수업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거론되는 아이디어와 질문 그리고 답변의 내용이 단순한 수업의 것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바로 적용이 되는 산 지식과 경험이라는 것이다. 즉, 수업을 빙자한 연구프로젝트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토론 내용의 수준과 깊이가 매우 전문적이었다.

토론의 주제가 되는 문제 상황은 포드 자동차 회사가 실제로 직면한 문제였고, 해당 주제를 제안한 사람은 바로 학위취득을 위해 파견된 포드의 직원이었다. 학과 교수들도 각자의 전문 분야 관점에서 그 문제를 분석하여 해당 학생(포드에서 파견된 직원)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안해주되, 필요 시 자기 연구실 소속의 일반 대학원생을 동참시켜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즉 교수는 컨설팅 및 자문을 담당하고 일반 대학원생은 아웃소싱을, 그리고 회사에서 파견된 직원은 연구프로젝트 수행을 총괄하면서 비용을 포함해 지원역할을 맡고 있었다.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가 독립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닌, 대학이 보유한 기술과 지식 그리고 인력을 지원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박사 과정의 한국 유학생에 따르면, 학생들은 이 과정을 장학금 수혜를 위한 단순한 근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고 있는 연구 주제를 자신의 학위논문으로 연결시킬 정도로 매우 중요한 수업이자 연구 과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EMMP 과정에 참여하여 연구를 수행했던 대학원생들 중 졸업 후 포드 자동차 회사로 취직을 하여 대학에서 수행하던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한 EMMP 과정을 통해 석사 학위를 취득했던 포드의 직원들 중 많은 수가 이 과정을 계기로 박사 학위 과정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대학에 위탁한 연구의 결과가 기업의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결과는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1995년부터 현재까지 13년이 경과하도록 이 대학의 산업생산공학과와 포드 자동차 회사의 협력 관계가 지속되어오는 것만으로도 EMMP 과정의 실효성과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나름대로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필자로서는 참으로 부러울 수 밖에 없는 체제이자 프로그램이었다. 공모되는 연구 프로젝트가 일부 대학과 연구실에 집중되는 현실도 그렇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연구비 규모와 연구 수행 기간이 오히려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연구 수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 더욱 서글프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는 대학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참으로 참담한 평가까지 나오게 되는가 보다. 과연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데에까지 온 우리나라의 산학 협력 체제의 문제를 당연시 받아들이는 과오는 이제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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