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후 재정적자 누적 탓...'대학생 천국'은 옛말

필자의 유학 시절과 비교해볼 때 현재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유학을 계획하는 제자들이 박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학생도 누렸던 학업과 생활에서의 혜택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생들은 저렴한 비용의 기숙사, 광범위한 의료혜택, 자녀양육비 보조 등으로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특히, 등록금 납부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학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여건이 후학들에게도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무료로 누릴 교육의 혜택은 시민에게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예컨대 독일 대학의 강의실에서 노인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 불태우지 못했던 학문에 대한 열정, 또는 학생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며 사회의 화두를 알아내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모습을 관측하기 위해 노인들은 강의실 나들이를 했겠지만, 그들 중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해 만학의 꿈을 실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교육의 평등과 개방의 토대 위에 펼쳐진 ‘대학생의 천국’ 독일이 현재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온 교육재정의 막대한 적자는 통일 후 더욱 심화됐고, 급기야 대학의 등록금 도입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독일 전역에서 등록금 도입을 반대하는 집단행정소송과 법원의 판결을 부정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초 이 제도는 대학에 장기간 학적을 두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정부가 등록금 납부의무를 신입생에게까지 확대하자 여러 대학의 학생회는 이 제도가 1976년부터 시행해온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위한 사회계약법’을 거스르는 것이라 주장하며 학기당 500~600유로의 등록금 납입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의 사립대 등록금이 인문계열의 경우 학기당 400만원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약 90~100만원의 등록금 납입을 거부하는 독일 대학생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교 졸업 후 독립해 부업 등을 통해 생활비를 버는 상당수 독일 대학생들에게 독일 정부가 공표한 월 최저생계비인 640유로에 근접한 금액의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독일 정부는 중산층 이하 자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학금 수여, 저리의 이자 또는 무상환의 학자금 융자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사회적 불만을 불식시키는 데 그다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학재정 확보를 위한 독일의 대학등록금 도입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뒤쳐진 독일대학교육의 위상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은 유럽대학을 단일화하고, 유럽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개혁 프로그램인 이른바 ‘볼로냐 프로세스’를 통해 학·석사 학위제도를 도입하고, 대학운영을 기업경영으로 이해하며 교수에 대한 평가 강화 및 대학 간의 경쟁을 유발해 교육 품질을 높여 독일대학을 정체의 늪에서 건져내려 한다.

그러나 최근에 발간된 ‘2008 제2차 국가교육보고서’는 개혁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보여주며 독일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었다. 예년에 비해 대학생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했고, 특히 학업 중도포기자의 수가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진양성을 위한 보다 강력한 투자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어서, 독일의 수상은 이러한 난국의 타개를 위해 몸소 나서서 여야를 막론한 사회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개혁과 투자를 위한 심도 있는 논의에도 불구, 독일정부의 예산절약정책으로 인해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당장 눈앞에 산적한 현안 해결에 집중한 나머지 대학에 대한 투자는 부차적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발전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투자의지의 문제를 인식한 야권은 이러한 구태의연함으로 인해 독일이 과거의 50년대로 퇴보할 것임을 경고한다. 자유민주당은 현행 대학교육을 카스트제도에 비유하여 교육의 기회가 사회적 출신배경에 의해 좌우됨을 지적했고, 녹색당은 구동독지역의 재건과 복지를 위해 마련한 재정을 이제는 대학투자로 전환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독일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귀감이 된다. 정부 역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학에 투자할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에 발표된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에서 4위이지만, 대학교육의 경쟁사회 요구부합은 53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충격적인 결과를 통해 정부는 미래의 국가 경쟁력이 대학에서 비롯되며, 대학에 대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만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생존전략임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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