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필자가 지난 2004년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재학했던 미국 하버드대(Harvard University)의 학부 교육 과정은 나름대로 독특한 시스템과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학부 수업의 전반적인 모습과 그 중에서 대학원생 훈련과 학부생 교육의 접점에 있는 소규모 섹션(section) 및 튜토리얼(tutorial)이라는 수업 형태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하버드의 경우도 우리나라 대학과 마찬가지로 커리큘럼은 코어 프로그램(core program)이라고 불리는 교양 프로그램과 각 학과에서 제공하는 전공 프로그램으로 나누어지며, 한 학기에 예닐곱 개의 과목을 수강하는 우리나라 대학과 달리 학생들은 한 학기에 대략 네 과목을 수강한다.

코어 프로그램은 외국문화, 역사적 연구, 문학과 예술, 도덕적 추론, 수리적 추론, 과학, 사회 분석 영역으로 나뉘어지며, 학부생들은 각 영역마다 적어도 한 과목을 필수적으로 선택·수강하여야 하는데, 인기 있는 과목은 수강 인원이 수백 명 씩 되기도 하는 등 많은 경우 대형 강의다. 이런 코어 프로그램은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좀더 다양하고 전통적인 학과구분을 넘어서는 과목들로 구성되는 ‘하버드 대학 코스’ 프로그램으로 개편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교양과목의 경우 시간강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비하여, 하버드는 코어와 같은 핵심 교양 프로그램을 매우 중시하여 대부분 각 학과에서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전공 교수들이 담당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들도 인기 있는 학부 교양과목을 계발하고 가르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하버드에서는 교양과목이나 전공과목에 상관없이 대형 강의뿐만 아니라 소규모 강의의 경우에도 수강 인원이 열 명 정도가 넘게 되면 대부분 담당 수업조교가 배정이 되어 과제 및 시험 채점 등의 일을 담당하게 된다. 수업 조교는 미국 타 대학의 경우 teaching assistant(TA)라고 불리지만 하버드에서는 teaching fellow (TF)라고 부르며 학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일원으로 여기고 있다.

어학이나 실험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부 수업은 한 강좌당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수업을 3회 하게 되는데, 그 중 2회는 담당 교수가 강의를 하고 1회는 보통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TF가 진행하는 섹션으로 구성이 된다. 섹션은 5-15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 세미나로서 학생들이 수업 조교와 함께 그 주에 교수로부터 배운 내용이나 그 주의 과제에 대해 심층적, 비평적인 토론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하는 시간이다.

섹션 수업은 대형 강의의 단점을 보완하여 학생들이 여러 가지 사고를 시험해보고 배운 것들을 구체적으로 응용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대학원생 TF들에게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효과적인 교수법 훈련의 장이 된다. 특히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교육 과정으로서 대부분의 학과에서 적어도 한두 학기 이상 TF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과목 담당교수는 장차 학자·교수 등의 전문가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들을 훈련하는 동시에, 각종 시험 및 과제 채점 등의 업무에서 벗어나 보다 훌륭한 강의의 계발과 준비,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한편, 각 학과에서는 전공 여부 및 학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일반 전공과목 외에, 전공생들이 특정학년에 필수적으로 선택하여야 하는 튜토리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과마다 운영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으나, 필자가 재학했던 언어학과의 경우 2학년 튜토리얼은 대학원생 TF들이 주 강사가 되어 진행하고, 3학년 튜토리얼의 경우는 학과 전임 교수들이 주 강사가 되어 진행한다.

튜토리얼은 정규 과목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특정주제 등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많은 경우 사례연구(케이스 스터디)의 형태를 띤다. 언어학과의 경우, 2학년 튜토리얼의 내용 및 강좌명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매 학기 대학원생들이 다음 학기에 자기가 제공하고자 하는 튜토리얼의 강좌명과 강의내용 등이 담긴 제안서를 학과에 제출하고, 학과 교수진이 제출된 제안서를 심사· 선정하여 튜토리얼 담당 TF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담당교수의 지도 하에 섹션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튜토리얼 TF는 강의계획서 작성에서 학생지도,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강의과정의 주 강사가 된다.

그 외에도 경험이 풍부한 TF는 학과의 주임TF가 되어 학부 주임교수와 함께 매 학기 시작 전에 학부생들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학습계획을 짤수 있도록 수강지도를 한다. 3학년 튜토리얼은 학과의 전임 교수들이 담당하는 소규모 세미나 또는 개인 튜토리얼이다. 그리고, 우등 졸업을 위해 학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4학년생은 개인 튜토리얼을 신청할 수 있는데, 한 학생 당 박사과정 TF 한 명과 전임 교수 한 명이 배정되어 일년 동안 일 주일에 1회씩 논문지도를 한다.

이와 같이, 섹션과 튜토리얼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동시에 연계하여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하버드에서는 이런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TF들을 위한 교수법 세미나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매 학기 개강 일주일 전 정도부터는 특별히 TF들을 위한 교수법 워크샵 및 세미나가 며칠간에 걸쳐 열린다. 일반적인 교수법으로부터, 계열별로 효과적인 교수법, 외국인 TF를 위한 교수법, 그리고 연극배우를 초빙해 제스처와 발성을 연습하는 시간까지 다양한 강좌를 통해 TF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외에도 교수법 향상을 위한 개인 지도 및 외국인 TF를 위한 영어 개인교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항시 진행되고 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리처드 라이트(Richard Light)교수가 쓴 ‘최상의 대학생활 보내는 법(Making the Most of College)’이라는 책에 따르면, 소규모 수업 수강과 학업 만족도 사이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섹션이나 튜토리얼과 같은 소규모 수업형태는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시험해보고 독립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도와주며 수업 참여도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교수 요원, 우수한 대학원생, 교실의 충분한 확보 등 비용 및 제도적인 문제와 결부되므로 우리나라 대학 여건에서 채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수업형태이다.

현실 여건상 어려움이 있지만, 학부생 차원의 소규모 세미나 수업을 조금씩이라도 도입하여 학생들을 자극하고, 특별히 학생들의 전공과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소규모 강의가 점진적이나마 강조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대형 강의의 경우에도 라이트 교수의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대립된 견해를 가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 등 대형 강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교수법 계발이 필요하다. 한편, 우리나라 인문·사회계 대학원생의 경우는 연구조교도 있지만 많은 경우 행정보조 조교로만 활용되고 있고 수업조교 경험 등을 통한 훈련의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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