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묵 경영학과 교수 대담...'채용 계약서 1년마다 썼다'

"회사를 옮기면서 1년에 한번씩 (채용)계약서를 썼어요. 공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보면 살벌하다고 할테죠. 그러나 자신을 지켜주는 건 기업이 아니라 자기 실력이라고 봐요"

이창훈(46) 푸르덴셜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은 40대 초반에 거대 기업의 CEO가 됐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안정보다는 변화에 섰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률 하락에 고민하는 대학과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기업 취업에만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장은 지금까지도 매년 채용계약서를 새로 쓴다.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이 사장을 만나 도전과 기업 경영, 대학에 바라는 인재상을 들어봤다.

이경묵 = "최근 펀드 수익률이 바닥입니다. 투자자는 물론 운용사도 우울할 것 같은데요. 국내 금융계에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이창훈 = "교수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싸이클이 3년 반 정도 안좋다가 다음 3년 반 정도 좋아지고 2000년 들어 주기가 더 짧아졌어요. 지난 5년 정도는 좋았죠. 호황이 깊은 만큼 불황의 골도 깊고 기간도 더 길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버블이 좀 줄어드는 시간을 지나야 다시 나아질 것 같습니다. 어쨋든 당분간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이경묵 = "2003년 동원투신 운용본부장 재직 시절에 'SK글로벌 신용위기'와 'LG카드 사태' 당시에 위험 관리에 탁월했다는 평을 들으셨는데요. 노하우는 무엇인지요"

이창훈 = "욕심을 내지 않는 겁니다. 과도한 탐욕은 안됩니다. 우리 조상들 보면 감을 딸때 항상 까치밥을 남겨두고 딴것과 같죠. 투자라는 것도 모두 다 먹겠다고 덤벼들면 '나쁜 놈'이 되기 십상입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인베스트먼트 베니핏 위기, 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은 모두 탐욕이 커진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한가지는 남들보다 조금만 더 예민하게 시장 변화를 보고, 반발짝만 앞서가라는 겁니다."

이경묵 = "젊은 나이에 외국계 거대 기업 CEO가 돼셨는데,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창훈 = "기업이라는게 결국 퍼포먼스를 내는 거라고 보면, 성과를 내는데 있어서 좋은 품질의 금융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상품이란 고객한테 좋아야하는 것이지만, 고객이 원하는게 꼭 좋은건 아니라고 봅니다. 애가 뭐달라고 때를 쓴다고 막 주면 오히려 해가 될수도 있는거니까요. 결국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프로세스와 이를 엮어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경묵 =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사철학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이창훈 = "직원을 새로 뽑으면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직장생활하면서 이것만은 꼭 명심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강조하죠. 월급보다 더 많이 회사에 기여하는지 생각해보고, 내가 받는것 보다 더 많이 회사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이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도리라는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아랫사람의 얘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포지션이 어디든지 간에 자기 밑 사람이 얘기하는 걸 모르면 공부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


이경묵 = "주제를 대학으로 옮겨볼까요. 졸업하고 취업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대학들이 취업률 높이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은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기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도 하구요. 대학이 어떠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창훈 =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대학 입장에서 보면 고객이 기업입니다. 학생들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죠. 심하게 얘기하면 대학이 수요자 위주의 마인드가 약한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 몇개 대학들은 '샐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고객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세상에 서울대 가려면 시험보고 가야하잖아요. 세상에 물건 사는데 시험보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학생들을 얘기하기 전에 대학자체가 변화를 해야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학생들이 변화할 수 있는거라고 봅니다."

이경묵 = "경영대 학생부학장을 맡은 뒤, 학생들에게 뭘해줬는지 봤더니 강좌 열고 알아서 들으라고 한 것 뿐이었어요. 예전에 저희때는 특히 그랬었죠. 요즘은 나아지고 있지만요. 얼마 전 기업체 인사담당자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그들은 품성과 리더십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있더군요. 그런데 학교에서 이를 어떻게 길러줘야할지 쉽지 않습니다."

이창훈 = "실력이 모자도 되지만, 품성이 안되면 곤란합니다. 저희 때는 실력이 없었잖아요. 데모도 많이 했고, 요즘 친구들은 영어도 잘하고 지식도 많아요. 그런데 품성 측면에서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친구는 계약서 싸인 다하고 출근 일주일 전쯤에 못 나오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참는것도 잘 못합니다. 젊은 사람인데 1~2년 사이에 2~3번 회사를 바꾸는 친구도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요새 친구들은 너무 계산을 잘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약간 바보같은 면도 있어야 하는데, 재밋는 현상 중 하나는 채용 인터뷰때, 왜 지원하느냐고 물으면 다 자기중심적인 말을 합니다. 나한테 이런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여기에 지원했다고요. 틀린 얘기는 아니죠. 그런데 회사에서 거꾸로 보면, 너는 나한테 뭘 줄 수 있느냐고 묻고싶은거죠. "

이경묵 = "의견에 공감합니다. 신입사원을 뽑아서 어떻게 인품 좋은 사람으로 키우나요. 대학의 책임 중 하나인데,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하죠."

이창훈 = "예전처럼 무식하게 솔선수범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노력하고 임원들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요. 솔선수범보다 좋은게 없습니다. 대학의 시스템, 교수님들의 자세, 시스템 등에 묻어있어야 합니다. 가르쳐 봐야 잘 안되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기업의 문화처럼, 대학도 문화적으로 고객마인드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인재를 기르는데 집중했으면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대학들은 모두 연구중심대로만 가려고 하는것 같아요. 아직까지 대학의 기능이 인재양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 중 하나는 예전에 서울대 경영대 정원은 300명이었는데, 지금은 130명이라죠. 경영대 졸업생의 수요는 훨씬 커졌는데, 학생수는 거꾸로에요. 아이러니한겁니다. 기업은 그렇게 하면 망합니다."

이경묵 = "새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기조는 '대학의 자율화'입니다.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자율화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요."

이창훈 =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왜 대학이 자기가 뽑으려는 학생들을 자기의 기준에 따라 뽑지 못하나. 회사가 필요한 직원을 회사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학이 책임져야한다면 굉장히 이상한겁니다. 물론 대학도 나라 전체에서 보면 질서라고 하는 부분도 공유하고 가야하겠죠. 그러나 질서라고 하는게, 맨 위에서 결정하고 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하면 회사는 망합니다. 하부 단위가 목표는 공유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통합된 질서가 나오는거죠. 큰 가이드라인은 정하되, 그 안에서는 자율적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묵 = "학생들을 보면 공기업과 의사 변호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합니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시죠."

이창훈 = "회사를 옮기면서 1년에 한번씩 (채용)계약서를 썼어요. 얼마나 살벌하게 살았겠습니다. 학생들이 보기에. 지금도 일년마다 계약서를 갱신해요. 공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보면 살벌하다고 할테죠. 그러나 여러분을 지켜주는 건 공기업이 아니라 자기 실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실력이 있다면 해고되더라도 시장에서 결국 인정해줍니다. 또 변화하는 쪽에 서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은 도전에 서는 쪽이 훨씬 이길 확률이 높다고 봐요. 그 다음에는 열심히 하는 거죠. 변화를 테이크 하는 것은 준비한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기회이고 운이기도 하죠."

■ 이창훈 푸르덴셜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은 = 2006년 1월 푸르덴셜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취임해 CIO를 겸임, 펀드 운용과 경영을 총괄 책임지고 있다. 자산운용 부문에서 18년 넘는 경험을 가진 자산운용 전문가로, 리서치는 물론 투자신탁 펀드, 뮤추얼 펀드, 외수펀드(Korea Growth Fund), 역외펀드(Korea Prime Fund)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 운용의 베테랑이다. 특히 2003년 동원투신 운용본부장 재직 중 터진 SK 글로벌 신용위기와 LG카드 사태 당시 관련 채권의 편입이 없는 등 펀드 위험관리에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재무관리 석사를 받은 이 사장은 1989년 국민투자신탁(현 푸르덴셜자산운용)에 입사해 조사분석, 주식운용, 국제운용 업무를 담당했으며, 1996년에는 삼성투자신탁운용 설립멤버로 참석해 주식운용팀장을 맡아 투자 프로세스 정립과 주식형 펀드 운용을 총괄했다. 2000년 맥쿼리-IMM 자산운용 상무이사, 2002년부터 3년간 동원투신운용(현 한국투신운용) 운용 본부장(CIO), 한국금융지주 상무이사를 역임했다.

■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 서울대 경영대를 준최우등(마그나쿰라우데:magnacumlaude)의 성적으로 졸업(1986년)한 뒤 동 대학원에서 인사관리 석사(198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인사조직 전공으로 박사(1995년)학위를 취득했다.
학부 재학 중 삼일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시보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1996년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부임해 12년간 교편을 잡아왔으며 작년 2월부터 경영대 학생부학장을 맡고 있다. 교외에서는 한국인사조직연구 저널 편집위원장(2007년 6월~2008년 5월)을 역임했다.
서울대 상과대 동창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교수상(2003년)'을 수상했으며, '미국 경영학회지(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2002년 최우수 논문상, '백범리더십 논문상'(리더십 학회, 2006년 5월)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기업의 조직관리(2003년)',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원 개발(2002년)', '한국 경영의 새로운 도전(2002)' 등이 있다.

<정리 : 한용수 기자 / 사진 : 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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