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42. 미네르바 스쿨, 난양공대 등 혁신대학 교육모델 도입 ‘그림의 떡’
코로나19로 교육 변화 요구 확대, 대학들 고민과 달리 규제 벽 ‘단단‘
대학 간 협력 탐탁지 않은 모양새, 평가 잣대로 ‘경쟁 구도 조장‘
현실감 없는 정책, 혁신 ‘발목 잡기‘, 도전 의지 살릴 자율성 확보 시급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대학혁신지원사업’ ‘고등교육 혁신방안’ 등 ‘대학’ ‘교육’ ‘혁신’은 최근 정부 고등교육 정책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다. 대학 교육이 혁신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정부만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도래로 새로운 인재상이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더해지며,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대학도 변화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온갖 규제와 정부 주도 평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새로운 시도에 나서기란 요원한 일이다. 대학 교육에 들이대는 일률적 평가 잣대가 획일적 교육을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란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뒤쳐지는 대학들…해외 ‘혁신 대학 모델’? ‘규제 천국’에서는 실현 불가 = 우리 고등교육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 언급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들이 있다. 프랑스의 ‘에꼴42’와 미국의 ‘미네스바 스쿨’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의 혁신 교육 모델을 도입할 수 없다. 규제 때문이다.

에꼴42는 강사도, 교과서도, 학비도 없는 교육기관이다. 하루 14시간씩 코딩을 하며, 동료들과 협업해 매일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에꼴42 학생들의 일과다. 문제를 해결하며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문제해결력을 기른다. 우리에게는 분명 낯선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들은 에꼴42 모델을 도입할 수 없다. 평가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전임교원 확보를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 전임교원 확보율 지표에 15점을 배점했다. 전임교원을 얼마나 늘렸는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매기는 구조다. 강사가 없는 에꼴42는 현실적으로 우리 대학이 들여올 수 없는 모델이다. 

미네르바 스쿨은 캠퍼스가 없다. 학생들은 7개 국가를 돌며 글로벌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공부한다. 하지만 한국대학은 법정 기준에 따라 교사확보율 100%를 준수해야 한다. 미네르바형 교육 방식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최근 들어 원격수업 제한이 풀리면서 비슷한 시도는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올해 코로나19가 전국적인 확산을 기록하자 이뤄진 조치일 뿐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원격수업 규제는 여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그간 방송대나 사이버대가 아닌 일반대에 대해서는 원격수업 개설학점을 총 학점의 20%로 제한해 왔다. 대학원 원격수업도 이수 가능한 학점의 20%로 제한했다. 이를 해제한 것은 올해 9월의 일이다.

이전부터 대학가는 줄기차게 한국형 미네르바 스쿨 출현을 막았던 원격수업 규제를 풀어 달라 요청했다. 해외의 대학들이 원격수업을 통해 자유롭게 여러 가지 교육 실험을 하는 동안 우리 대학의 변화 의지는 규제에 의해 다스려졌던 셈이다.

A대 총장은 “올해 긴급히 대학들이 원격수업을 도입하면서 한동안 진통을 겪은 것은 규제 탓이 크다”며 “원격수업을 활성화하려는 의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상한제 때문에 대학에서도 어쩔 수 없이 원격수업을 등한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생의 출석 관리 여부까지 들여다보는 평가가 시행되는 이상 난양공대의 사례도 우리 대학들에는 적용 불가능한 모델이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난양공대의 교육 특징 중 하나는 플립드 러닝을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수업할 내용을 사전 자료를 통해 익히면, 이를 두고 학생들과 자유롭게 토론한다. 동영상 강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학교에 등교하고 수업에 출석하는 것은 성적 평가 요소나 강의 질 관리 요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윤호섭 난양공대 교수에 따르면, 난양공대에서는 출석체크 시스템 자체가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난양공대를 방문했던 한 국내대학 교수는 “학생 출결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출결여부를 확인했는지 교육부로부터 관리받는 보수적인 상황에서 자유롭고 유연한 교육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통해 학생 출결관리 점검 체계와 현황‧성과‧후속조치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정작 난양공대의 세계적 명성은 더 엄격한 관리 속에 있는 국내 대학들보다 높다. 난양공대는 공신력 있는 대학 평가로 여겨지는 ‘QS(Quacquarelli Symonds) 2021 대학평가’에서 아시아 대학 중 2위를 차지했다. 세계 대학 중에서는 13번째 성적이다. 같은 평가에서 서울대는 아시아 대학 중 9위, 세계 대학 중에서는 37위에 이름을 올렸다.

■입학 인원 규제가 불러온 부작용 = 입학 정원 관련 과도한 규제가 시행되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현재 교육부는 대학의 입학 정원을 대학기본역량진단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그간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충원율’ 지표를 통해 학생 모집이 적절한 규모로 이뤄지는지를 평가했다. 일견 수긍할 만한 일로 보이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충원율을 높이기 위한 부정입학 사례들이 이에 해당한다.

입학 부정비리뿐 아니라 학생 모집에만 치중한 학과 구성도 문제다. 이는 결국 학생들의 전공선택 기회를 제약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6월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대학 정원 규제가 전공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정원 규제가 대학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를 심화시킨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KDI는 “우리나라에서 전공 선택이 제약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각종 정원 규제에서 찾을 수 있다”며 “정원 규제가 대학‧전공의 서열화로 집약되는 ‘입시-취업의 이중적 선별과정’과 맞물리면서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지 않던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시작될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은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만큼 입학 정원을 줄이라는 압박을 강하게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이전 주기 평가에 비해 충원율 지표 배점이 10점이나 늘어났다. 이는 결국 입시 비리라는 부작용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이 충원율 지표를 통해 지방대 등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는 2021년 대학기본역량 진단에 대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미충원 대부분은 지방대와 전문대 몫이 될 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가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우선으로 학생이 충원되기 때문”이라며 “충원율은 대학 자체적인 노력보다 학령인구, 대학 소재지와 규모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본역량’ 진단 지표로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대학 간 협력’ 막는 대학 평가 = 정부는 그간 ‘공유’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지표는 정부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유와 협력은커녕 대학 간의 협력을 정부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다. 

최근 정부의 관심은 ‘대학 간 협력’이다. ‘신기술 혁신공유대학 지원사업’은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재정지원사업이다. 교육부는 신기술 분야 인재 10만명을 양성하겠다며 해당 사업을 최근 신설했다. 내년부터 진행되는 신기술 혁신공유대학 지원사업은 인공지능‧빅데이터‧차세대반도체‧사물인터넷 등 신기술 분야 교육 역량을 가진 대학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개별대학이 가진 노하우를 공유하자는 것이 사업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을 보면 정부는 정작 대학 간 교육 교류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에는 ‘교직이론과정 전임교원 확보기준’에 관한 지표가 있다. 교직이론과목을 가르치는 교육학전공 전임교원 규모를 바탕으로 해당 과목의 전문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확보기준이 학생수 300명 이하인 경우 교원 2명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교직이수 정원이 작은 소규모 대학에서는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기에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학들이 단순히 비판에만 매몰돼 있던 것은 아니다. 대학 간 연합을 통해 교직이론 과목을 연계하고, 연합한 대학의 전임교원 숫자를 합쳐 평가해달라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전문성을 가진 교원이 강의를 한다는 ‘핵심 가치’를 볼 때 평가의 목적을 충족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은 ‘학점 교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고, 결국 소규모 대학은 해당 평가에서 불리한 위치에 내몰리게 됐다.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협력’에 나섰지만, 오히려 관이 이를 가로막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규제로 인해 새로운 교육모델 도입은 ‘언감생심’인 상황에서 학생 정원, 충원율 등 온갖 지표들로 몸살을 앓는 처지에 대학들이 놓여 있는 이상 ‘규제와 평가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율성을 늘리는 것’이 교육 혁신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황홍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교육과정 운영체제와 충원율, 취업률과 같은 지표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학생 만족도, 법인의 책무성과 같은 핵심 정책지표를 위주로 평가해야 한다”며 “교육 혁신을 위해서는 대학의 도전 의지를 꺾는 획일적인 평가 잣대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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