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오전 9시 재택근무 중인 A는 사무실에 있는 B팀장에게 가벼운 아침 인사말과 함께 내부 포털에 접속해 있는 컴퓨터 화면 사진 한 장을 문자로 보낸다. 근무를 시작했다는 신호다. B팀장은 사무실과 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화상으로 연결해 업무회의를 하고 각자 일을 시작한다. 

사무실은 이제 특정한 한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는 곳이면 모든 곳이 사무실이다. 코로나19는 개인을 물리적으로 고립시켰지만 우리는 서로를 선으로 연결해 나간다.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연결해 언제든 화상으로 만나 회의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나’도 달라져야 한다. 같은 사무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우리’가 ‘나’를 지켜준다. 나는 어느 정도 조직의 시간과 흐름에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고립된 공간에서는 오로지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결과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강의실 강의보다 혼자서 이끌어가는 온라인 강의가 다들 훨씬 어렵다고 호소한다. 온라인 강의는 단 일 분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고, 홀로 그 시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립된 그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중용(中庸)》은 “군자는 그 보이지 아니하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아니하는 곳에서 두려워한다. 숨은 것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미세한 것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獨, 홀로 독) 조심(愼, 삼갈 신)한다”고 했다. 바로 신독(愼獨)의 마음가짐이 그 지혜가 될 수 있다.

신독의 마음가짐은 학생에게도 중요하다. 강의실이 아닌 온라인 환경에서 학생은 교수를 쉽게 속이고 나아가 자신마저도 속일 수 있다. 스스로 삼가지 않는다면 누구도 바로잡아주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수업은 온라인으로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시험만은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지금까지 학교와 학생이 서로 철저한 감독 아래에서 시험을 치르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어쨌든 학생들에게는 홀로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강제로 주어졌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학생들은 그동안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캠퍼스의 낭만과 허상 속에서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했으며, 감시 속에서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받았다. 코로나19 위기가 학생들이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 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부터는 내가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필요하면 찾아봐야 한다. 성적표가 나를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적표가 돼야 한다. 교수는 그러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 외에도 신독의 표상이 돼 주면 좋겠다.

신영복 교수는 《담론》에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라 하더라도 특정 계급에 갇히지 않는 장기적이고 독립적인 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오늘’로부터 독립한 사유 공간, 비판 담론·대안 담론을 만드는 공간이 바로 대학입니다. 지식인도 그 사회적 입장에 있어서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고독한 연구실에서 스스로 학문을 추구하는 교수는 신독을 수행하는 지성인이다. 넓게는 대학 캠퍼스 자체가 신독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2020년 독립적 사유 공간인 대학의 교수와 학생, 직원은 서로 고립됐다. 이 고독한 인고의 시간 끝에서 신독의 마음으로 나를 되돌아보자. 새해에는 활기찬 캠퍼스를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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