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오고 말았다.”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치명적으로 올 줄은 몰랐다.” 올해 입시가 끝난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다. 수시등록과 정시모집 결과지를 받아 든 대학관계자들의 자괴감 넘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백약이 무효’라는 자조 섞인 말 속에 핀치에 몰려 있는 대학의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학령인구 감소는 먼 훗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문제가 됐다. “과감한 구조개혁의 칼을 빼 들은 강원도 모 대학 총장의 결단이 한 없이 존경스럽게 보인다”는 인근 대학 총장의 힘없는 말 속에서 ‘애진작’ 구조개혁에 돌입하지 못한 대학 총장들의 아쉬움을 읽을 수 있다.

대학에서 입학자원은 ‘알곡’으로 불린다. 정시모집에서 많은 대학들이 ‘알곡 하나 없는 시장’을 헤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추가모집 기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자 한명만 있어도 지옥까지 가겠다”는 모 대학 입학처장의 비장함이 ‘입시현장’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진작부터 2021학년도에 밀어닥칠 신입생 대량 미달사태에 대해 경고음을 발해 왔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이웃 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따른 대학 폐교현황들을 제시하면서 정부나 대학이 미리 준비해야 함을 주문했다.

그런 지적에 주의를 기울인 많은 대학들이 특성화, 슬림화를 단행하며 대학 체질을 강화해 왔다. 정부당국도 2000년대 초반부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중간 지점에서 본 2021학년도 입시결과는 대학의 자율적 구조조정과 대학재정지원사업과 연계된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정부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2014년에 도입돼 2017년에 2주기 기본역량진단으로 변화됐다. 올해 3주기 기본역량진단이 실시될 예정이다. 이미 3주기 기본계획은 나갔고 5월·6월에 평가가 있을 예정이다.

자료에 따르면 1주기 구조개혁 평가로 4만4000명이 감축됐다고 한다. 목표인 4만명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보건계열 감축, 정원감축 제재, 야간정원 감축 등을 더할 경우 감축인원은 5만3540명에 달한다. 원래 목표를 초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책당국의 강한 구조조정 의지가 있다. 이로 인해 평가 후 정부 주도 획일적 정원감축에 대한 비판이 도처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2주기 구조개혁에서는 ‘평가’라는 말을 쏙 뺐다. ‘평가’를 ‘진단’으로 바꾸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자율조정’으로 바꾼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이었다. 진단에 따른 정원 권고수준이 2만명 이내에 머물렀다.

2주기 진단에서는 관이 주도하는 획일적 감축은 지양하고, 자율개선 이외 대학에만 정원감축 권고가 내려졌다. 1주기 평가에서는 A등급 대학만 정원조정에서 예외였던 데 반해 2주기 진단에서는 자율개선대학 64%를 제외한 36% 대학만이 정원조정의 책무를 떠안게 됐다. 그마저도 편제정원 1000명 미만 소규모 대학에 대해서는 정원 감축이 미권고됐다. 이러니 실제 정원 감축 인원은 1주기 평가 대비 큰 폭으로 축소됐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량 미달 사태를 앞두고 호기롭게 시작됐던 대학 구조개혁 정책이 기조가 돌연 바뀜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3주기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학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책임은 대학에도 있다. 하지만 마냥 대학만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학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것은 열악한 재정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대학재정의 상당 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학생 수를 줄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대학운영 자금 확보에 빨간불이 켜지는데 미래를 위해 구조조정에 선뜻 나서는 대학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조조정과 관련된 대학구성원 간의 불협화음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결국 대학구조조정은 정부 정책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다. 관 주도, 획일화, 강제 등의 부정적 평가가 따르지만, 성과 없는 ’자율‘ 보단 ’공생‘을 위한 ’강제‘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의 입학시장 혼돈현상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대학과 정부의 어정쩡한 구조개혁 정책이 자초한 결과다. 정부는 1주기 구조개혁 평가 이후 대학사회의 거센 비난을 회피하려고 했는지 강력한 대학 구조조정 원칙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대학사회 자율 입학정원 조정이라는 소극적 자세로 돌아섰다. 

이제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연성화가 가져올 충격파는 당분간 대학사회를 강타할 것이다. 30%에서 40%의 신입생을 못 채우는 대학들이 속출하고, 고정비조차 감당하지 못할 대학들이 생길 것이다. 고정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대학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구조조정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꽉 틀어잡고 여론에 떠밀리듯 이리저리 방향성 없이 표류하는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원래 정책수립 배경에 맞춰 곧추 세워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가장 우선적인 현안으로 다뤄주기 바란다. 1주기와 2주기 평가결과를 비교해 3주기 정책달성 목표를 조정하기 바란다. 올해가 중요하다. 2021년은 2주기 사업 종료 해이면서 3주기 진단 해다. 과연 정책당국이 2021년 신입생 충원성적표를 받아들고 어떤 방향으로 진단을 이끌어갈지 자못 궁금하다. 정책은 타이밍인데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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