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인원 활용해 첨단학과 인원 증원 방식
“일자리 미스매치…기존 정원규제 자체를 재검토해야 ”
실효성 지적에 교육부, 첨단학과 4700명 증원
“수도권 정원 규제 풀면 지방대 고사할 수도”

정세균 국무총리가 14일 세종 다솜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국무조정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4일 세종 다솜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국무조정실)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정부가 과도한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챌린지’를 이달 중 도입하고, 그간 소외돼 왔던 대학 관련 규제도 손본다고 발표했다. 대학 정원·시설 등에 그간 가해졌던 규제 전반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과 대학교육 간 미스매치의 원인으로 지목된 정원규제 자체는 그대로이기에 비판이 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규제에 묶인 대학들이 시대변화에 부응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대학설립요건 법령개정 내년에 착수될 듯 = 국무조정실은 ‘2021년 규제혁신 추진방향’에 따라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고등교육규제를 개선한다고 최근 밝혔다. 대학의 정원·교원·교육과정·시설 등 규제를 종합적으로 정비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규제정비 방안을 올해 12월 발표한다. 

대학의 설립·운영 요건인 교원·교육과정·시설 등을 손보는 이유 중 하나는 원격교육 도래로 해당 요건들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달 시작되는 1학기부터는 원격수업 20% 제한이 완전히 폐지된다. 대학 규정에 따라 1학점만 대면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원격수업으로 채우더라도 졸업할 수 있다. 해외 대학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학사·석사 과정은 100% 온라인 수업만 들어도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사무처장은 “코로나19로 대학들이 대부분 원격수업을 하고 있다. 캠퍼스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설립 요건은 시대 적합성을 상실했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 간 학사교류, 공유형 연합대학, 공동 학위제 등 다양한 대학유형에 비춰볼 때 대학설립 요건 규정은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을 하다 보니 설립요건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책 연구를 통해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현재 정책연구 기본계획을 세운 상태다. 정책연구 후 의견을 수렴해 내년부터 법령 개정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도권 정원 규제는 그대로…첨단학과 통해 정원 증원 = 대학 정원 규제 개선방향은 대학별 전체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첨단학과에 국한된 것으로 파악됐다. 첨단학과 신·증설은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방안으로 첨단 분야 인재 8000명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융합학과 설치‧운영 요건을 완화한다. 제적·퇴학 인원 등 결손인원을 활용해 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대학설립운영규정도 손보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첨단 학과의 정원의 규제를 푼다기보다는 유연화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면 된다. 결손인원과 편·입학 인원을 활용하면 신입생 수가 늘어나지만, 전체 학생 수는 유지하는 방안”이라며 “전체 정원의 규제를 풀 수는 없다는 데 대해 입장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대학가에서는 수도권 규제와 대학 정원을 건들지 않고, 결손인원을 활용한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매년 얼마만큼 발생할지도 모르는 결손인원에 기대 학과 신·증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학과 통폐합을 통해 융합학과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 등 내부 구성원의 반발을 고려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황 사무처장은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입학정원과 학과 증설이 제한받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팽창돼 왔다”며 “정부는 대규모 신도시 등을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대학에 대해서는 다른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적한 규제는 1982년 만들어진 ‘수도권정비계획법’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한 법으로 대학이 정원을 늘릴 경우 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39년 전 생긴 해당 법 때문에 총 정원의 발이 묶인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전체 정원을 건드릴 수 없기에 시대변화에 따라 인력 양성 체제를 유연하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표적 피해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다. 2008년부터 15년 동안 입학 정원이 55명으로 고정됐다. 과기정통부의 ‘AI 국가전략’ 계획에 따라 2020년 들어서야 겨우 70명으로 증원됐다. 반면, 미국 스탠퍼드대는 같은 기간 141명이었던 컴퓨터공학과 입학정원을 739명으로 다섯 배 이상 늘렸다. 

■“일자리 미스매치, 재검토” vs. “국토균형발전 차원” = 이러한 문제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에 해당된다. 여러 정책 기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를 충분히 배출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SW정책연구소는 2022년까지 AI인재 9986명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28년까지 첨단산업 9개 분야에서 약 11만9597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학과만큼은 정원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학 정원 규제가 노동시장 전반의 미스매치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KDI의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2020)’에 따르면 OECD 중 한국의 전공-직업 부조화 비율은 50%에 달해 전체 평균인 39%를 웃돌았다. 보고서는 “대학 전공과 직업 간 높은 부조화 비율이 각종 정원 규제에서 비롯됐다”며 “각종 정원규제가 입시-취업과 맞물리며 많은 학생이 희망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KDI가 전국 4년제 사립대학에서 전공별 입학정원 조정이 있었는지 분석한 결과, 비수도권 사립대에서는 어느 정도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수도권 사립대에는 전공별 입학 정원 조정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KDI는 높은 부조화 현상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으로 기존 정원규제 자체를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부는 첨단학과의 경우 증원 효과를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송근현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장은 “지난해 45개교에서 첨단학과 4700여 명이 증원됐다. 앞으로도 지속해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올해 신설한 디지털 혁신공유대학사업을 통해 대학 간 공동학과 설치 등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체 정원규제에 대해선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이 지방대로 향하는 상황에서 총 정원 규제를 풀면 지방대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 과장은 “수도권 대학 입장에선 피해를 주는 규제일 수 있어도 국토 차원에선 합리적 규제로 볼 수 있다”며 “수도권정비법이 국토부 소관인 만큼 교육부만이 아닌 범부처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큰 틀에서 정책 대변환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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